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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격! 리허설 ⑤ ‘거친’ 한영애가 맥북을 만나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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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한영애는 2002년부터 7년간 라디오 DJ를 하며 사람관계의 포용력을 배웠다고 했다. 그러나 음악에서 만큼은 단호했다. “음악은 긴장해야만 되고 정신 차려야만 된다”고 말했다. [안성식 기자]

더 이상 그를 ‘소리의 마녀’라 부르지 말자. 주술을 외는 듯한 무대 매너와 심장을 긁어대는 허스키한 보컬에 제 아무리 감전되더라도 말이다. 물론 그의 퍼포먼스와 목소리는 신비롭다. 종종 이 세계 밖에 존재하는 듯 착각할 정도다. 그래서 쉬 이렇게 부르곤 했다. ‘마녀’ 가수 한영애.

 그러나 오해였다. 그는 오늘의 대중들과 소통하는 걸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뮤지션이다. 그러니까 이 세계 밖 ‘마녀’가 아니라 우리 어깨를 토닥이는 ‘언니’이자 ‘누나’에 가깝다. 그는 “노래한다는 건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다는 프러포즈”라고 말한다.

 한영애가 대중에게 직접 프러포즈를 건넨다. 15~16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단독 콘서트를 연다. 프러포즈에 담긴 메시지는 직설적이다. 공연 타이틀이 ‘윌 유 매리 미(Will you marry me)?’다. 그는 “대중에게 ‘제 음악과 결혼해 주실래요?’라고 묻는 것이다. 팬들과 좀 더 내밀한 소통을 하고 싶어서 붙인 타이틀”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에게 ‘마녀’라 불리던 여성 뮤지션. 한영애가 말하는 소통의 음악이란 어떤 걸까. 팬들과의 ‘결혼’ 준비가 한창인 그의 리허설 현장을 찾았다. 한영애식 ‘소통’의 뜻을 알아채는 데는 그리 두터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서울 명륜동 그의 연습실에 들어섰을 때, 그가 요즘 대중에게 말을 걸기 위해 매만지고 있는 사운드가 들려왔다.

 “음악이 좀 새로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예전에 발표한 곡들을 요즘 대중들이 공감할 만한 사운드로 재창조하면 어떨까 고민했죠.”

한영애가 서울 명륜동의 연습실에서 밴드 연주에 맞춰 콘서트 리허설을 펼치고 있다.

 말하자면 이런 식의 사운드다. 우선 그의 리허설 현장에서 마주친 면면을 일러둔다. 한영애의 오랜 음악 파트너인 송홍섭 프로듀서(베이스)를 비롯해 드럼·전자기타·키보드 등 밴드와 코러스 두 명이 있다. 여느 콘서트에서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세션 구성이다. 그런데 다소 낯선 세션이 눈에 들어온다. 맥북 컴퓨터 두 대가 자리를 꿰차고 있다. 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 어둠은 늘 그렇게 벌써 깔려 있어….’

 한영애의 대표곡 ‘누구없소’가 시작되자 의문이 풀렸다. 밴드가 연주하는 ‘리얼 사운드’와 컴퓨터가 만들어낸 ‘디지털 사운드’가 살을 섞으며 음악이 진행됐다. 한영애 특유의 거친 음색이 디지털 사운드와 맞물리자 80년대와 2000년대가 끌어안은 듯한 노래가 빚어졌다.

 -아날로그 뮤지션 이미지가 강한 편인데 파격적인 실험을 하셨군요.

 “파격이라고요? 저는 늘 함께 살아가는 대중과의 소통에 관심이 많았어요. 시대 흐름에 따라 만들어진 사운드와 리듬은 다 경험해보고 싶었죠.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지금의 대중들이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사운드를 고민했어요.”

 한영애는 1977년 그룹 해바라기의 멤버로 데뷔했다. 이후 연극 무대로 잠시 달아났다가 86년 솔로 1집 ‘여울목’을 발표했다. 이태 뒤 발매된 2집 ‘바라본다’가 50만장 넘게 팔리면서 스타 뮤지션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매체에서 그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던 건 아니다.

 특히 2003년 트로트 명곡을 재해석한 음반 ‘비하인드 타임’을 발표하고선 영 소식이 뜸했다. EBS 라디오 프로그램 ‘한영애의 문화 한 페이지’에 집중하면서다.

 “가끔 소극장 공연은 했지만 음악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못한 건 사실이에요. 워낙 한가지밖에 못 하는 성격이라…. 라디오를 그만 두고 보니 마치 직무유기를 한 것처럼 대중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음악에 집중하면서 또 다른 시작을 해야죠.”

 한영애는 다음 달께 디지털 음원을 발표할 예정이다. 기존 히트곡을 디지털 사운드로 재편곡한 음원이다. LP나 CD 형태가 아닌 방식으로 음악을 발표하는 건 데뷔 이후 처음이다.

12월 말까지 신곡을 포함해 한 달에 한 번 꼴로 디지털 음원을 내놓을 생각이다. 한영애의 소름 돋는 아날로그 보컬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낯설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익숙하지 않더라도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선 요즘의 방식들에 관심을 갖고 열려있는 마음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만그만한 가수들이 예쁜 멜로디에만 몰두할 때, 어떤 뮤지션은 사운드 자체를 깨부순다. 한영애는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자신이 수십 년 간 구축해온 사운드를 기꺼이 재건하는 뮤지션이다. 그런데도 그를 ‘마녀’라 불러야겠는가. 한영애는 음악으로 소통하는 우리 ‘누나’이자 ‘언니’다. 공연 문의 02-517-0394.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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