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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Focus] 학생군사교육단 창설 50주년 이동형 ROTC 중앙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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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군사교육단(ROTC·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이 지난달 창설 50주년을 맞았다. 남북 대치 현실에서 초급장교 육성을 위해 창설된 이래 17만 명에 이르는 건아가 ROTC를 거쳤다. 전방 소대장 중 70% 이상이 ROTC 출신이다. 육·해·공군, 해병대는 물론이며 사회 각 분야에서 ROTC 출신들이 활약하고 있다. 이동형(65) 대한민국ROTC중앙회장을 서울 삼성동 중앙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1970년 부산대(조선해양공학과)를 졸업하고 72년 중위 제대 이후 줄곧 조선업에 몸담아왔다. 92년 ‘스타코’라는 회사를 설립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2009년 무역의 날에 동탑산업훈장을 받은 ‘수출역군’이다. 그는 “ROTC는 대한민국 인재 양성 사관학교”라고 자부했다.

글=성시윤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어떤 동기로 ROTC를 지원하셨나요.

 “장교로 군 복무를 한다는 게 굉장히 매력적이라 생각했죠.”

●한때 ROTC 경험이 취업에 도움이 되던 시절이 있었죠.

 “취업 시 ROTC 우대는 70년대 후반에 생겼어요. 저는 순수하게 리더십을 배우고 싶었지요.”

●ROTC 출신의 공통점 같은 게 있겠죠.

 “아무래도 부지런하고 성실한 학생들이 ROTC를 지원하죠. 자기 역량을 키우고자 하는 열망이 강한 사람들이죠.”

⑦0년에 임관하셨는데 군 복무는 어디서 했습니까.

 “제가 수송병과를 받았어요. 경기도 포천 6군단 예하 수송부대에 있었습니다.”

●장교로 군 복무를 해보니 어땠습니까.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소대장 생활을 보냈어요. 작전을 하든, 운동을 하든 소대원들과 호흡이 아주 잘 맞았어요. 우리 소대원들도 저를 많이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기억나는 일화들이 있나요.

 “탈영하거나 사고를 치고 우리 부대에 오는 사병이 간혹 있었어요. 그런 사병들이 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저희 중대로 오도록 요청했습니다. 상당히 제 머리를 아프게 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별탈 없이 잘 제대시켰어요. 제대 때면 내가 지프에 태워 자기 집 가는 버스터미널까지 태워주곤 했죠. 그럼 제 손을 잡고 ‘소대장님, 제 성격에 군 생활 제대로 못 마칠 줄 알았습니다. 고맙습니다’ 하면서 울기도 했어요.”

●그런 사병들을 어떻게 적응시켰습니까.

 “그런 사병들은 제가 특별히 배려했어요. ‘다른 중대에서 머리 아프면 나한테 보내라’ 할 정도로 자신 있었어요. 그 친구들의 문제를 그들 개인 문제만으로 보지 않았어요. 그네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애로사항이 무엇인지를 파고들어갔어요. 술을 좋아하는 친구에겐 술을 사주면서 얘기를 나눴죠. 그러면서도 ‘네가 이런 선까지는 지켜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너를 더 이상 보호 못한다’고 말했죠”

●그럼 바로 설득이 됐나요.

 “우리 부대에 식수 담아놓는 큰 수조가 있었어요. 술 좋아하는 그 친구가 여름에 술 먹고 수조 속이 시원하니까 그 속에 들어가 눕기도 했어요. 그런 친구들을 설득하는 게 어떻게 쉬웠겠어요. ‘룰’ 속에 들어올 수 있도록 유도해 점진적으로 변화를 시켰죠.”

●다른 사병들과 형평성 문제도 생길 텐데요.

 “고참 사병들과 얘기를 많이 했죠. ‘그런 친구들이 말썽 일으키는 것보다는 낫지 않으냐’ 고요. 고참들이 저를 많이 이해해 줬어요. 그래서 말썽 부리는 친구들을 나름대로 배려하고, 군대의 틀 속에 들어올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기다릴 수 있었죠. 문제 있는 친구들도 군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나갈 수 있도록 해준 게 제 보람이었죠.”

●장교 경험이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겠군요.

 “제가 제대하면서 월급 받은 것을 그대로 부대원들에게 ‘회식하라’고 주고 나왔어요. 내가 그렇게 군대 생활을 했어요. 얼마나 단합이 잘됐느냐 하면 체육대회 앞두고 달밤에도 우리가 연습을 했어요. 제가 승부욕도 좀 강하긴 했지. 하하하.”

●제대하시곤 조선업에 뛰어드셨죠.

 “대한조선공사에 입사했어요. 우리나라 중공업 1호 아닙니까. 나중에 한진중공업으로 이름이 바뀌었죠. 20년 정도 근무했어요.“

●장교 경험이 회사생활에 도움이 됐나요.

 “저는 직장생활을 할 때도 ROTC의 장교 정신을 갖고 했어요. 책임감을 가지고 내가 맡은 일은 정말 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정말 자부심 갖고 일했습니다. 이사가 되고 나서 2년 만에 자진해 회사를 나왔어요. 그것도 장교의 자존심 같은 것 때문이었어요.”

●스타코는 어떤 회사입니까.

 “선박이나 해양구조물에 들어가는 주거·생활공간을 설치하는 회사입니다. 배 안에 방·응접실·욕실·부엌을 꾸민다고 하면 저희 제품이 들어갑니다. 30개 국가에 수출도 하고 있어요.”

●규모는요.

 “지난해 매출이 1500억원이었어요. 국내 정직원이 350명 정도 되고요, 중국 등 해외 근무하는 인력까지 다 합하면 우리 직원이 3000명이 넘습니다.”

●어려움은 없었나요.

 “직원 두 명과 시작했는데, 쭉 성장일변도였어요. 매년 20~30%씩 성장해 왔죠. 외환위기가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됐어요. 오늘날 한국이 세계 1위의 조선국이 된 것도 다 외환위기 덕입니다. 저희 회사도 그때 해외수출 시장을 뚫기 시작했죠.”

●ROTC 경험이 기업 경영에 영향을 줬나요.

 “‘항상 정도를 가고, 최선을 다한다’는 장교 정신으로 임했어요. 그래서 은행에서만 돈을 빌렸지, 다른 사람들에겐 돈을 빌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기업을 시작한 이상 우리 종업원들에게 어떻게든 어려움을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어요. 제 자랑 같아서 더 이상은 얘기 안 하렵니다.”

● ROTC 출신이 우리 사회의 큰 자산입니다.

 “ROTC가 이제 17만 명입니다. 전국 방방곡곡 어느 직종, 어느 분야에나 다 있습니다. 장교 정신에 입각해 솔선수범을 하고 있죠. 월남전에서부터, 중동 열사의 건설현장까지 우리 ROTC 출신들이 중간 리더로서 앞장서왔지 않습니까. ROTC 출신은 우리나라에 보배스러운 인적자원입니다. ROTC는 한마디로 ‘대한민국 인재 양성 사관학교’라고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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