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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혼자는 힘들다, 떼로 덤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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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심상복
논설위원

회사 앞에 꽤 유명한 콩국수집이 있다. 얼마 전만 해도 8000원이었는데 어느새 9500원이다. 1만원의 심리적 저항은 아는 듯하다. 벽에는 TV에서 맛집으로 소개된 장면이 여러 장 붙어 있다. 검은콩으로 고소하면서도 걸쭉한 국물을 만드는 게 비법인 것 같다. 종업원 서비스는 그저 그렇지만 손님은 늘 붐빈다. 맛이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먹는 사람들마다 한마디씩 한다. 국수 한 그릇이 왜 이리 비싸냐고. 모순이다. 여름에 영양이나 시원한 맛으로 이만 한 게 없다고 하면서 값에 대해 툴툴대니 말이다.

 모름지기 가격이란 모든 요소가 다 버무려진 것이다. 맛은 물론 직원의 친절도, 위생상태, 접근성까지 두루 감안된 게 가격이다. 이런 구체적인 정보를 모르고 식당에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한번만 가보면 다음에 그 집을 다시 찾을지 말지 쉽게 결정할 수 있다. 가격 대비 만족도가 잣대다. 이미 잘 아는 식당에 가서 값이 왜 이리 비싸냐고 불평하는 건 단수가 낮은 소비자다. “아마추어 같이 왜 그래”라는 소리를 들어도 싸다.

 프로 소비자는 어떻게 행동할까. 간단하다. 값이 비싸다고 생각하는 집엔 가지 않는 거다. 그 집 물건을 사주지 않는 것이다. 비싼 가격에 대처하는 온당하고도 강력한 수단이다. 내가 안 가도 콩국수집에 손님이 넘친다고? 그렇다면 그 집 가격은 나에게만 비싼 것이다. 그래도 혼자 중얼거린다. 먹고 싶은데 값이 좀 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주인 판단은 전혀 다르다. 9500원에도 손님이 줄을 선다면 더 올리고 싶은 욕심이 생길 뿐이다. 외식비를 때려잡겠다는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이 들이닥친다 해도 겁나지 않는다. 재료비·인건비·임대료 등 둘러댈 이유는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이 가격과는 무관한 위생검사와 소방검사를 들고 나온다면 움츠러들겠지만.

 농심은 지난 4월 ‘신라면블랙’이라는 신제품을 내놓았다. 신라면은 수퍼마켓에서 600∼730원 하지만 블랙은 1400∼1700원이나 한다. 회사 측은 ‘설렁탕 한 그릇의 영양이 그대로 담겨 있다’ ‘완전식품에 가깝다’고 선전했다. 출시 두 달간 매출이 160억원을 넘었다. 소비자들이 열심히 사 먹은 결과다. 그런데 완전식품 운운한 것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지만 광고 내용이 엉터리였다. 설렁탕과 비교한 영영가가 탄수화물은 78%, 단백질은 72%, 철분은 4%에 그쳤다. 몸에 나쁜 것은 훨씬 많았다. 비만 요인인 지방성분은 설렁탕의 3.3배, 고혈압·중풍의 원인이 되는 나트륨은 1.2배나 많았다. 공정위는 허위·과장 광고라고 판단해 시정명령과 함께 1억5500만원의 과징금을 물렸다. 매출액의 1%도 안 되는 푼돈이다. 그 무섭다는 공정위가 나서도 요 정도다.

 소비자들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과장 광고로 고객을 우롱했으니 응징해야 한다. 사주지 않는 것이다. 가격은 해마다 올려야 하는 것으로 아는 콩국수집에 대해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라면을 찾는 수많은 사람을 한 데 모을 방법이 없다. 콩국수집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온다. 소비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어 힘이 생기지 않는다. 뭉쳐야 한다. 회사 근처 식당에 대해 직장 단위로 ‘나쁜 식당’ 명단을 만드는 것이다. 주위의 다른 회사와도 공유하고 식당에도 뿌린다. 식당 주인들이 겁먹지 않을 수 없다. 아파트 주민들은 부녀회가 중심이 돼 인근 식당 품평회를 열어 같은 식으로 대처한다. 사회적으로는 소비자시민모임 같은 소비자단체가 앞장서는 것도 방법이다. ‘다음 식당은 올 들어 값을 20% 이상 올린 곳입니다.’ 이런 정보를 인터넷 맛집 소개 코너에 올린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도 퍼나른다. 이게 급등하는 생활물가에 대처하는 소비자 행동요령이다. 혼자서는 힘들다. 떼로 덤벼야 한다.

심상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