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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보의 심리 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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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환영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보수·진보 성향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회과학은 어떤 사람이 보수이거나 진보인 이유를 소득·지역·교육·종교 등의 사회·경제적 변수를 동원해 설명한다. 한계에 다다른 방식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심리적 원인으로 사람들의 진보·보수 성향을 설명하는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심리학적 접근법에 따른 보수·진보 성향 연구가 1960년대 이후 주춤했다가 다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미국 심리학자들의 80%가 진보라는 것이다. 미국 교수 사회에서 진보는 보수보다 6배는 더 많다. 미국 캠퍼스는 민주당 아성이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경우는 격차가 더 벌어진다.

 교수들의 이념 편향성 때문에 과거에는 ‘보수는 일종의 병적인 상태’ ‘진보는 정상적인 상태’라는 식의 전제를 깔고 연구가 설계됐다. ‘진보주의자들이 보수주의자들보다 IQ가 높다’ ‘불행한 유년기를 보내면 자라서 보수가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최근 연구들은 중립성이 강화됐지만 그럴듯하면서도 뭔가 머리를 갸우뚱하게 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예컨대 보수주의자들은 살고 있는 집이나 사무실을 깨끗하게 정돈하는 경향이 있고, 진보주의자는 어질러놓고 지내는 경향이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연구가 있다. 아버지와 함께 개그 프로에 나왔는데 사전각본에 따라 아버지에게 따귀를 때리는 데 주저하지 않으면 진보, 주저하면 보수라는 개연성도 주장된다. 실수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음료수를 먹고 당황하면 보수, 그렇지 않으면 진보라는 인과관계를 주장하는 연구도 있다.

 버지니아대 조너선 하이트 교수에 따르면 보수와 진보는 중시하는 도덕적 가치도 다르다. 진보는 공정성과 위해(危害)의 저지를 중시한다. 보수는 공정성과 위해의 저지뿐만 아니라 권위·위계질서, 충성, 순결함·성스러움을 추가로 중시한다. 하이트 교수가 제시하는 보수적 성격의 특징으로 주목할 만한 점은 혐오감·메스꺼움을 참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류는 상한 음식, 특히 상한 고기를 먹고 탈나지 않기 위해 혐오감을 발전시켰는데 혐오감은 도덕의 영역으로 확산됐다는 것이다. 예컨대 보수주의자들은 낙태나 동성연애 같은 행위를 ‘더럽다’고 생각한다.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더럽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본인은 혐오스럽게 생각해도 ‘혐오스러운 게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다’고 생각하도록 교육받았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보수와 진보는 서로 만나고 서로 이해하는 게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심리학은 보수·진보의 만남이 힘든 이유를 속속 밝혀주고 있다. 인간이 이성을 사용하는 방법까지 양자의 만남을 방해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사람이 추론하는 이유는 참과 거짓을 구분하고 더 좋은 결정을 내리고 진리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인간은 이성을 대화가 아니라 말싸움에 이기기 위해 사용한다는 뜻이다. ‘확인편향(confirmation bias)’이라는 개념도 보수·진보의 만남 가능성을 암울하게 한다. 확인편향은 정보의 참·거짓과 무관하게 자신의 믿음과 일치되는 정보만을 선호하는 경향이다.

 성격·심리가 보수·진보의 원천이라면 사실(fact)을 바탕으로 보수와 진보가 대화하고 타협할 수 있다는 기대는 환상에 가깝다. 사람 성격만큼 요지부동인 게 없다. 보수는 ‘종북주의자’들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진보는 자신을 ‘종북’으로 모는 보수를 이해할 수 없다. 천안함·연평도·4대 강 사업에 대해서도 인식의 수렴은 어렵다.

 차라리 보수·진보가 영원히 평행선을 달리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자. 미국의 경우에도 보수와 진보는 서로 혐오한다. 그러나 각기 제 몫을 하고 있다. 진보는 개방성에 바탕을 둔 창조성을 발휘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진보는 음악·영화·문학·회화 등의 분야를 장악하고 있다. 안정·안보를 중시하는 미국 보수는 부패를 혐오하고 자선 기부도 더 많이 한다. 미국 사회에 안정감을 주는 것은 보수다. 우리의 보수와 진보가 본받을 만한 콤비플레이다.

김환영 중앙SUNDAY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