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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논리도 체면도 팽개친 최중경 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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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아름다운 마음으로 가격을 내렸으니 올릴 때도 아름다운 마음을 유지해 달라.”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지난달 30일 이렇게 말했다. 4월 7일부터 석 달간 L당 100원씩 기름값을 인하키로 한 정유 4사의 조치가 오는 6일 끝나는 걸 앞두고 한 소리다. 100원 인하가 정부 압력의 산물인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그런데도 그걸 정유사들이 아름답게 내렸다고 치켜세운다. 환원할 때도 아름답게, 즉 조금씩 올리라는 압력을 넣기 위해서다.

 이 발언이 정유사에 부담을 주지 않겠느냐는 지적에 대해 그는 즉각 “부담 좀 느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GS칼텍스가 바로 단계적 인상을 약속했다. 나머지 3사도 따를 것이 뻔하다. 내릴 때도 그랬으니까. 당시엔 업계 1위인 SK에너지가 총대를 멨고, 이번엔 2위 업체가 앞에 나섰다. 웃지 못할 촌극(寸劇)을 보는 듯하다. 주인공은 완력을 가진 어른과 어린아이 넷이다.

 최 장관은 재무부에서 전문 관료로 잔뼈가 굵었고, 현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차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뒤 올 초 지금 자리를 맡았다. 하와이대 경제학 박사인 그가 경제논리도 없이, 장관으로서 체면도 팽개친 채 막무가내로 나가고 있다. 지난 2월 그는 연임이 확정된 오강현 석유협회장을 날려버리기도 했다. 정부의 집요한 기름값 인하 압력에 저항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기름값 인하는 사실 최 장관의 뜻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을 읽고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100원 인하도 일종의 쇼였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소비자시민모임의 석유시장감시단 조사에 따르면 주유소 실제 인하 폭은 60원 정도였다. 전국 1만2000개 주유소 가운데 100원 인하 약속을 지킨 곳은 5%도 안 됐다고 한다. 석 달 기한이 임박하자 또 다른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며칠만 참으면 100원을 더 받을 수 있다며 주유소들이 판매를 꺼리고 있다. 정유사들도 주유소 공급량을 줄이고 있다. 정부의 어설픈 개입이 시장만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최 장관이 진정 기름값 안정을 바란다면 말로만 민간 정유사를 겁줄 게 아니다. 인하 폭이 100원에 못 미쳤다는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며 올릴 때도 그 이상은 안 된다고 분명하게 말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