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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김석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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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유효경쟁이 이뤄질 테니 걱정마라.”

 5월 중순 우리금융 재매각을 추진하면서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여러 차례 한 말이다. 이런저런 우려가 제기돼도 김 위원장은 “시가총액이 순자산의 70%도 안 되는 우리금융에 모두들 관심을 갖게 돼 있다”며 자신 있는 표정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속내는 조금 달랐다는 게 금융위 주변의 전언이다. 산은금융에 입찰 자격을 주지 않겠다고 발표한 6월 중순 그는 “이대로 무산되면 또 3년을 허송하게 된다”며 답답한 심정을 내비쳤다. 하반기부터 총선과 대선으로 이어지는 정치 분위기가 형성되면 우리금융 매각이 불가능해지고 다음 정부 때나 재추진될 수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지난달 29일 우리금융 입찰 결과는 김 위원장의 이런 우려를 현실로 드러냈다. 이날 입찰엔 보고펀드와 MBK파트너스, 티스톤 등 국내 사모펀드 세 곳이 참여했다. 금융계에선 “투자자의 돈을 끌어들여 단기 성과를 보여야 하는 사모펀드의 특성상 안정적인 우리금융 경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매각이 무산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김 위원장 입장에선 무엇보다 금융지주사들이 불참한 게 아프다. 금융지주사법 시행령을 고쳐 이들의 참여를 유도하려 했지만 여야 정치권이 모두 반대해 스스로 접을 수밖에 없었다. “임기 내에 무조건 한다”던 취임 초의 장담이 자칫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꼬이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론스타의 적격성 판단과 외환은행 매각도 일정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늘어지고 있다. 김 위원장이 당초 “4월 이내에 결정한다”고 했지만 대법원이 론스타의 주가조작 혐의에 대한 고법 판결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면서 진퇴양난이 돼 버렸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 이전 정책을 결정하자니 법률리스크가 신경이 쓰이고, 마냥 기다리자니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아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다. “구제역처럼 번지지 않도록 초기에 진압하겠다”던 저축은행 구조조정도 산으로 가고 있다. 각종 비리 사실이 터져 나오면서 검찰 수사와 정치권의 공방을 부르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모양새가 돼 버렸다. 농협과 현대캐피탈의 전산사고와 부실 건설사들의 ‘배째라식’ 법정관리 신청도 김 위원장을 괴롭힌 돌발변수들이었다.

 ‘강만수 리스크’와 ‘변양호 신드롬’가 각각 우리금융 매각, 외환은행 처리의 발목을 잡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산은금융의 우리금융 인수가 강만수 회장의 의중으로 알려지면서 ‘될 일도 안 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여당 내에서도 강 회장에 대한 반감이 그렇게 큰지 몰랐다”고 푸념하기도 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외환은행 처리가 워낙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다 보니 청와대와 정치권에서 ‘금융위가 알아서 하라’고 뒷짐지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이 공직을 떠나 있던 ‘3년의 공백’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올 초 장관으로 복귀할 때까지 그는 민간인 신분인 농협경제연구소장으로 일했다. 이 기간 중 정책에 대한 관심은 여전했지만 정무적 판단에 필요한 ‘큰 그림’을 보는 데는 다소 소홀했다는 것이다. 그 스스로도 ”민간인일 땐 신문을 유심히 안 봤다”고 한 적이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추진력과 금융감각이 탁월한 김 위원장도 ‘4대 천왕’으로 불리는 실세들이 금융권에 포진해 있는 구도에선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며 “이럴수록 원칙과 명분에 입각해 투명하게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현철 기자

◆변양호 신드롬=2003년 외환은행 매각을 주도했던 변양호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국장이 검찰 수사로 재판까지 받은 이후 공무원 사이에 책임이 뒤따르는 정책 결정은 피하려는 인식이 퍼진 것을 의미한다. 대법원은 재판이 시작된 지 4년여 만인 2010년 10월 변 전 국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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