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눈물의 빚잔치 … 아테네 공항부터 지중해 해변까지

몬테구 노먼(1871~1950)은 영국의 전설적 중앙은행가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 정부가 전쟁 빚을 갚는다며 정부 자산을 미국 자본에 넘겨주게 되자 비서에게 “망국의 아픔이 이런 것일까”라고 물었다. 요즘 그리스인들도 노먼과 비슷한 아픔을 느낄 듯하다. 30일(현지시간)까지 2차 긴축법안들이 모두 의회를 통과하면 정부 자산 매각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 빚잔치의 개막이다. 빚잔치는 서러울 정도로 일방적이다. 사는 쪽이 배짱부리는 시장(바이어스 마켓)이다. 파는 쪽은 저자세일 수밖에 없다. ‘제값을 쳐달라’는 말 자체가 사치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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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빚잔치의 규모는 클 듯하다. 자산매각은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59) 총리의 2차 재정개혁 내용 중 핵심이다. 27일 파판드레우 총리가 의회에 제출한 2차 긴축방안에 따르면 정부 자산 매각 규모는 710억 달러(약 77조4000억원)에 이른다. 이는 전체 자산의 16.5%(금액 기준) 정도다. 지난해 말 현재 그리스 정부가 보유한 자산은 7만여 건, 돈으로 환산하면 4300억 달러 정도다. 유로머니지는 최근 “(그리스의 자산 매각 규모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클 듯하다”고 보도했다.

　파판드레우 총리는 빚잔치 한판으로 매각 대상을 모두 처분하지는 않는다. 2015년까지 몇 차례 잔치를 벌여 현금화하려고 한다. 파판드레우 총리가 매각 리스트까지 의회에 보고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은 소문·추정·억측·편견의 용광로다. 이미 이런저런 물건이 나올 것이란 설이 무성하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그리스와 글로벌 시장 관계자들의 말을 바탕으로 빚잔치에 나올 가능성이 큰 자산 10가지를 29일(한국시간) 소개했다.

　WSJ 리스트 가운데 가장 값이 많이 나갈 자산은 헬레닉우편은행이다. 지난해 자산 규모는 240억 달러였다. 덩치는 크지 않지만 그리스 서민의 사랑을 받는 소매금융회사다. 집권 사회당의 핵심 지지세력인 노동계는 우편은행 매각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리스는 자국 관문인 아테네 국제공항과 고대 올림픽 경기장과 아주 가까운 헬레니콘 공항, 그리스 철도 같은 굵직굵직한 인프라도 빚잔치에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엄밀히 말하면 공항이나 철도를 통째로 파는 게 아니라 운영권을 넘기는 것”이라고 WSJ는 전했다. 여행 강국인 그리스답게 정부 소유 레저시설도 매물로 나올 법하다. WSJ는 “카메나볼라 캠프장, 몬트파네스 카지노, 볼라그메니 마리나 등도 매물로 나올 전망”이라고 전했다. 채권국 독일 국민이 비아냥거리며 요구한 ‘고대 그리스 신전’이나 ‘신들의 섬’은 빚잔치에 나오지 않을 듯하다. 대신 아나비소스 해변 같은 일부 해수욕장은 매물로 등장할 수 있다.

　그리스는 다른 국가채무 위기국과 경쟁하며 자산을 매각해야 할 듯하다. 포르투갈과 아일랜드가 이미 정부 자산 매각에 뛰어들었다. 이들 나라보다 사정이 좀 나은 스페인도 국유재산을 처분할 움직임을 보였다. 부도위기로 조롱 대상이 된 그리스인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하이에나로 불리는 땡처리 전문 헤지·사모 펀드 앞에서 웃음을 흘려야 한다. 그만큼 그리스의 빚잔치 설움이 더 커질 수밖에 없을 듯하다.

강남규 기자

그리스가 내다파는 국유재산

① 볼라그메니 마리나 - 아테네 남쪽에 자리 잡은 해양레저 전문 항구

② 헬레닉 우편은행 - 전국 네트워크를 갖춘 소매 금융회사

③ 그리스철도 - 정부가 지분 100%를 소유한 기간 철도회사

④ OPAP & OEDIE - 국영 복권회사

⑤ 아테네 국제공항 - 2001년 문을 연 그리스의 관문

⑥ 헬레니콘 공항 - 고대 올림픽 경기장에서 가까운 공항

⑦ 몬트파네스 카지노 - 호텔 운영회사인 하얏트와 합작으로 건설한 호텔 카지노

⑧ 아나비소스 해변 - 1960년대 소금 생산 중단 이후 해수욕장으로 전환

⑨ 아판두 골프 코스 - 로데스섬에 자리 잡은 골프 리조트

⑩ 카메나 볼라 캠프장 - 온천 2곳을 포함한 레저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