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북핵 해결, 천안함 분리할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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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안희창
수석 논설위원

미국이 한국의 대북(對北)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냈다고 한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 등을 통해서다. 미국은 북한을 향해 남북관계 진전이 있어야 미국과 대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깔았다. 그러면서 한국에도 속내의 일단을 분명하게 전달했다. “지난 3년 가까이 대북 개입 정책이 없었던 한국의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으니 이제부터는 남북관계 진전에 적극 나서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전적으로 동조해왔던 미국이 이런 입장을 표명한 배경은 내년 미국 선거에 있다. 북한이 또다시 핵실험이나 무력 도발을 할 경우 오바마 정부의 대선전략에 큰 장애가 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선거에 올인할 수밖에 없는 데다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국민적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더 나아가 한반도에서 ‘선을 넘어선 긴장 격화’는 미국의 국익과 원천적으로 상충한다. 동북아 지역에 ‘영토’가 없는 미국으로선 한반도에서 ‘적당량의 긴장 상태’가 국익에 가장 부합한다. 그래야 개입의 명분도 생기고, 중국도 견제하고, 군산(軍産)산업도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역대 정부의 전통이었고, 오바마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남북관계가 급진전되자 ‘남북 철도 연결식 행사 규모를 축소해달라’는 식으로 제동을 건 것은 ‘과도한 평화 상태’를 의식한 것이다. 반면 이번에 “남북관계 진전에 적극 나서달라”고 요청한 것은 ‘과도한 긴장’을 우려한 것이다.

 현재 남북관계는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북한은 외교적 관례를 무시하고 비밀접촉 내용을 공개하는가 하면, 입에 담을 수 없는 용어로 남측 대통령을 비난하면서 각종 협박을 가하고 있다. 여기서 미국의 판단은 ‘북한이 문제인 것은 알고 있지만, 한국이 좀 더 대범성과 유연성을 보여 상황 악화를 막아달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공은 우리 정부로 넘어왔다. 정부 내에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은 천안함·연평도 사태와 분리해 대처하자는 전략을 놓고 견해가 나눠져 있다. 그러나 이제는 결단을 내릴 때가 왔고, 그 방향은 분리 쪽으로 잡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선 강구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군사적 방법으로 제거할 수 없는 이상 채찍과 당근을 다양하게 동원하는 개입 정책을 끊임없이 구사해야 한다. 북이 먼저 ‘진정성’을 보이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대처하는 것은 하책(下策)이다. 특히 6자회담으로 가는 전 단계인 남북 수석대표 회담에 천안함·연평도 사태를 결부시킨 것은 무리수였다.

 물론 천안함·연평도 사과를 끈질기게 물고늘어진 데 따른 성과도 없지 않을 것이다. 남측 정부를 과거처럼 ‘만만하게’ 보지는 못할 것이라는 점이 한 예다. 그럼에도 지금은 북핵 해결을 위한 프로세스를 가동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북한의 핵 능력이 갈수록 강화되는 현실을 계속 외면하는 것은 우리 안보에도, 한·미 동맹에도 도움이 안 된다.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 북한으로 하여금 천안함·연평도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게 만들 수 있는 안(案)을 강구하는 등 남북관계 전반을 관리해나가는 것이 보다 중요한 시점이 온 것이다.

안희창 수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