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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창고·영업사원 하나 없는데 … 유럽에도 아프리카에도 ‘온라인 단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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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수출을 하려면 해외에서 열리는 박람회에 부스를 설치하고 바이어를 찾아 헤매야 했다. 하지만 전자상거래의 발달로 한국 중소기업들도 해외 물류창고나 영업사원 없이 온라인 공간에서 수출 시장을 뚫을 수 있게 됐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사이트 이베이에서 직접 만든 제품을 팔고 있는 중소기업 3인의 성공 스토리를 들어봤다.

글=최지영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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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근 비컴어스 대표


비컴어스 장상근(37·사진) 대표는 직원 10명과 함께 13㎝ 이상 굽만 파는 여성용 ‘킬힐(높은 굽 신발)’에 집중했다. 이베이를 통해 이런 킬힐을 한 달에 6만 달러(약 6500만원)어치 수출하고 있다. 2003년 국내 고객을 대상으로 온라인몰을 개설해 직접 디자인한 신발을 팔다가 출혈경쟁에 해외로 눈길을 돌려 2008년부터 해외 시장을 공략 중이다. 그는 “한국 쇼핑몰에선 9900원짜리를 팔았는데 해외 고객들은 독특한 디자인의 200달러(약 21만7000원)짜리도 곧잘 찾아 훨씬 고가의 제품을 팔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 미국을 중심으로 했던 수출이 지금은 러시아를 비롯해 전 세계 90여 개국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온라인 단골들이 늘면서 행복한 경험도 했다. 유럽 보스니아의 디자이너 아이다 코먼이 패션쇼에 사용할 구두를 함께 제작하자며 의뢰해 보스니아 패션쇼에 자신이 제작한 구두를 올린 일도 있다.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도 한 번에 20~30켤레 정도의 주문이 정기적으로 들어오고 있을 정도. 장 대표는 “선진국일수록 유통이 발달해 자신이 원하는 구두를 어디서든 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개발도상국 고객일수록 더 온라인 유통에 의지하는 것 같다”며 “이런 틈새시장에 많은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성공 비결에 대해 그는 “까다로운 국내 고객의 요구를 맞추면서 단련되다 보니 소량의 주문 요청에도 꼼꼼하게 제품을 만들어 배송할 수 있게 됐다”고 답했다. 그는 “전 세계 고객이 페이스북에 우리 회사 신발을 신고 있는 사진을 올리는 게 흐뭇하다”며 “단기적인 가격 경쟁보다는 오래도록 전 세계 고객에게 온라인 공간에서 사랑받는 구두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김정욱 엘라코리아 대표

두 달에 한 번 신제품을 개발해 전 세계에 수출한다. 10명의 직원과 함께 이·미용 전문기기를 제조해 파는 엘라코리아 김정욱(35·사진) 대표 얘기다. 올해 초 시작했는데, 미국과 중국 등에서 구매 문의가 이어져 첫해 5만 달러(약 5400만원)의 수출을 기대하고 있다.

 처음엔 이베이에 물건을 올리고, 번역을 해주는 업무를 대행하는 대행사를 이용했지만, 석 달 전부터는 직원들이 이를 직접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중소기업들은 인원 한 명 늘리기가 빠듯한데, 해외 물류창고나 영업사원이 필요없으니 신제품 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온라인 수출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고정해 세워 놓을 수 있어 양손으로 자유롭게 애견을 들고 말릴 수 있는 애견용 헤어드라이기, 손바닥만 해서 들고 다닐 수 있는 고데기 등을 개발한 배경에는 이렇게 재빠른 제품 생산과 개발에만 올인할 수 있었던 덕이 크다. 이렇게 개발한 핵심 제품들은 서울 가산 디지털단지에 있는 본사에서 직접 만들고, 나머지 제품들은 중국 공장에 생산 의뢰를 한다. 김 대표는 “두 달에 한 번씩 개발한 신제품 중 반응이 좋은 것은 남기고, 나머지는 고객 요구에 따라 단종하거나 재빨리 업그레이드해 신제품을 낸다”고 말했다. 또 “인터넷 공간은 불만 글이나 칭찬 글이 빨리 자주 올라오기 때문에 고객의 요구를 실시간으로 반영해 속도감 있게 신제품을 개발하기가 용이하다”고 덧붙였다. 이베이 수출과는 별도로 중국 최대의 쇼핑몰 타오바오 입점도 추진하고 있다.

 김 대표는 “고데기·애견용 헤어드라이기 같은 틈새 제품들은 한국 시장이 좁아 국내 시장만 보고 있으면 큰 매출을 기대할 수 없다”며 “온라인으로 매년 100%씩 수출을 늘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김봉준 아타글로벌 대표

아타글로벌 김봉준(34·사진) 대표는 그간 서울통신기술·아이레보·웅진 등 디지털도어록 업체 여러 곳에서 일했다. 자기 사업을 꼭 해 보고 싶었던 그는 5년 전 동료들과 자신의 경험을 살려 디지털도어록 제조업체를 창업했다. 자체 개발 제품이 사전에 등록한 신용카드나 교통카드로도 문을 열 수 있고, 터치패드 방식까지 함께 쓰면서도 기존 제품과 가격이 동일해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김 대표는 “디지털도어록은 하나 개발하는 데 금형비용 등 2만 달러가 들어갈 정도로 투자비용이 많이 든다”며 “기술력 하나 믿고 창업했지만 국내 시장은 대기업과 브랜드 제품 위주라 수출로 눈을 돌렸다”고 말했다.

 중국·홍콩 및 제3세계로 수출하다가 더 저렴한 비용에 다양한 고객과 바이어를 만나고자 올해 초부터 이베이의 문을 두드렸다. 현재 30여 개 제품을 한 달에 약 1만 달러(약 1080만원)어치 수출하고 있다. 올해 온라인 수출 목표는 15만 달러다. 온라인에선 찾기 드문 무상서비스 1년6개월로 수출 액수를 꾸준히 늘리고 있다.

 그는 “제품이 비교적 고가라 자금이 묶이기 때문에 옥션이 제공하는 미국 무료 물류창고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점은 안타깝다”며 “창고도 창고지만 정부가 우체국 배송 관련 지원을 해 주면 중소기업에 많은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도어록은 한 개가 1.5㎏ 정도로 무거워 배송비가 많이 든다. 이를 줄이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는 것. 두꺼운 사용 매뉴얼을 제품과 함께 보내는 대신 인터넷으로 내려받게 하고, 박스 두께도 줄여 단돈 1000원이라도 아낀다. 그는 “대량 배송만 할인해 주는 대신 중소기업들을 위해 온라인 수출은 소량이라도 할인해 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온라인 사업자 배송료 할인” 미- 중 우정사업국 협약 맺어

전자상거래 지원 나선 각국 정부

세계무역은 전통 방식에서 전자 방식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B2B(기업 간 거래)만 따져 봐도 전자상거래 시장은 해마다 20%씩 성장하고 있어 올해는 10조6000억 달러, 2013년엔 14조6000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시노베이트가 글로벌 바이어들을 조사해 2009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바이어들이 거래처를 발굴하는 방법 중 1순위가 글로벌 B2B 사이트였고, 2위가 기존 단골 거래처 유지, 3위가 인터넷 검색이었다. 기존 방법인 박람회와 무역오퍼상은 4, 5위에 그쳤다.

 하지만 초고속인터넷 보급률 1위의 정보기술(IT) 인프라 선진국인 한국의 온라인 수출은 세계 20위권 수준이다. 세계 최대 B2B 사이트 알리바바닷컴에 등록한 한국 기업 수는 국가별 순위 26위, 또 다른 B2B 사이트 글로벌 소시스에 등록한 한국 기업 수는 28위에 머물고 있다.

 이렇게 아직 한국 기업의 온라인 수출이 걸음마 단계에 머무는 이유는 어떻게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09년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온라인 수출 부진 이유로 전문 인력 부족을 꼽은 곳이 64.3%에 달했다. 정부 지원도 미약한 단계다. 중소기업청의 지난해 수출 지원 예산 680억원 가운데 온라인 수출 지원은 49억원(7.2%)에 불과했다.

각국 정부는 이미 전자상거래 수출을 늘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국은 지방정부가 나서 수출업체에 대해 주요 온라인 B2B 사이트 등록비용의 최대 70%까지 지원하고 있다. 대부분의 B2B 사이트는 등록 때 500만~1000만원 정도를 등록비로 내야 해 중소기업들에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종 세금 환급 및 감면, 산업 발전 지원금, 온라인 수출 관련 인건비 지원도 활발하다.

또 미국과 중국 우정사업국은 최근 온라인 수출 판매자에게 최대 30%까지 배송 요금을 깎아 주는 ‘E-패킷’ 배송 지원 프로그램 협약을 맺었다. 3분기엔 싱가포르와 대만, 내년 2분기엔 일본 우정사업국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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