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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윤호의 시시각각

낙하산 총량 불변의 법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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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윤호
경제선임기자

낙하산 인사. 비효율과 불공정의 대명사로 비친다. 모두들 비판했고, 정부도 없애겠다고 했다. 공공기관 임원 추천제도 그래서 도입됐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요즘 공기업이나 공공기관 인사를 보면 달라진 게 없다. 관료나 정치권 인사들이 여전히 사장이나 감사로 내려가고 있다. 추천제라는 것도 낙하산을 공인하는 도구가 돼 버린 느낌이다. 물론 금융사 감사를 싹쓸이하던 금융감독원의 낙하산은 주춤해졌다. 하지만 그 빈자리는 다른 낙하산이 차지하고 있다. 낙하산의 원산지만 바뀌었을 뿐 그 관행은 여전하다. 왜 그럴까. ‘낙하산 총량 불변의 법칙’이라도 있는 걸까. 그렇다면 뭔가 낙하산의 존재 이유가 있기 때문일 거다.

 현실적으로 낙하산 인사는 일종의 통치행위다. 정권을 잡은 뒤엔 인사로 논공행상을 하는 법이다. 집권자에겐 낙하산 인사 수요가 분명히 있다. 인사 대상자들도 부담감이나 거리낌을 못 느끼는 듯하다. 관료의 경우 평생 월급 적게 받고 일했으니 늘그막에 따뜻한 자리 하나 챙기는 게 뭐 잘못이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낙하산을 받아들이는 기관도 적극적으로 반발하진 않는다. 정부와 긴밀한 관계에 있는 곳이 대부분이므로 차라리 ‘힘센 분’이 오는 게 낫다는 거다. 이처럼 보내는 쪽, 타고 내려오는 쪽, 받아들이는 쪽의 이해가 단단한 트라이앵글을 형성하며 이뤄지는 게 바로 낙하산이다.

 실제 낙하산이 공공기관에 결정적인 피해를 줬다면 지금까지 이렇게 성할 수가 없다. 여론은 온통 낙하산의 폐해를 공격하지만, 학계에선 설이 다소 엇갈린다. 한국행정학회 논문집(행정학보)을 찾아보면 그렇다. 1985~96년의 정부투자기관 경영을 분석한 논문(2001년)에선 낙하산 사장의 실적이 나쁘다고 지적됐다. 반면 99~2005년의 실적을 조사한 다른 논문(2007년)에선 낙하산이나 전문인사나 별 차이가 없다고 분석됐다. 낙하산이냐 아니냐보다 관련 분야의 경험과 전문성이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낙하산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뜻이다.

 낙하산은 우리의 전매특허는 아니다. 일본의 ‘아마쿠다리(天下り)’ 관행은 훨씬 뿌리 깊다. 민주당 정권이 2009년 아마쿠다리 금지를 선언했지만 없애질 못하고 있다. 마크 램자이어 하버드대 교수는 아마쿠다리를 관료의 충성에 대한 당근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정치가 관료를 컨트롤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얘기다.

 이런 현실에선 낙하산을 아무리 성토해 봤자 실익이 없다. 차라리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단계적인 개선책을 강구하는 게 건설적이다. ‘낙하산 착지 가능 구역’을 따로 정해두고 그 외엔 원칙적으로 실적 인사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 전문가나 내부승진으로 채워야 할 A그룹, 관료·정치인을 배려하는 B그룹, 양쪽의 경계가 모호한 회색지대인 C그룹으로 나눠 인사를 하는 것이다. 예컨대 돈 버는 후각이 예민해야 하는 은행이나 서울보증보험 같은 시장형 금융사를 A그룹으로 지정하면 낙하산의 영공 침범을 막을 수 있다.

 민망하게 무슨 법이나 규정을 만들 필요까지는 없다. 컨센서스를 바탕으로 총리실이 암묵적인 가이드라인을 두면 어떨까. 물론 이게 되레 낙하산을 공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길게 보면 그게 낙하산을 줄이는 길 아닐까. 낙하산을 원천봉쇄하지 못할 바에야 일정 범위로 통제하자는 거다. 들러리나 줄 대기, 또는 노조의 출근 저지 같은 불필요한 ‘취임 비용’도 없앨 수 있다.

 이제 낙하산은 못 없앤다고 솔직하게 인정하자. 대신 예측가능하고 효율적인 방향으로 당당하게 바꿔 나가자. 금도(襟度)를 지키며 고품질 낙하산을 보낸다면 누가 시비 걸겠나. 아쉽게도 요즘 인사 돌아가는 걸 보면 이런 당당함을 이번 정부에서 기대하긴 어려울 듯하다. 다음 정부를 준비하는 분들, 명품 낙하산 5개년 계획이라도 미리 짜두길 권한다.

남윤호 경제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