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반값등록금, 무상복지의 공통점은 재정 악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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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백웅기
상명대 부총장

내년 총선을 의식해서인지 여야 정치권이 재원 조달 방안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등록금 인하와 재정지원 확대 방안을 쏟아내고 있다. 등록금에 대한 재정지원은 단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지속돼야 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무상복지 등의 사회복지 지출도 유사하다. 일단 늘어나면 다시 줄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재정위험이 커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재정건전성이 훼손되면 우리의 미래는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일부 남유럽 국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연일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재정수요를 모두 수용하면서 재정건전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요즘 분위기라면 반값등록금 이후에 또 다른 요구가 있을 것이 뻔하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우리나라의 국가채무와 복지 및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지출이 선진국보다 적은 데다, 재정 지출이 몇 조원 늘어난다고 해서 당장 문제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안이한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다.

 최근 재정 상황을 짚어보자. 한국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2008∼2010년 국내총생산(GDP)의 6.5%에 달하는 재정을 투입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GDP 대비 가장 큰 규모다. 다행히 외신으로부터 교과서적인 경기회복이라는 찬사를 듣기는 했지만 재정은 크게 악화됐다. 국가채무는 지난 3년간 94조원이 증가했으며 (관리대상)재정수지는 3년 연속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더욱이 한국의 노령화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속도가 빠르다. 2009년 국제통화기금(IMF)은 주요 20개국(G20) 국가의 노령화가 재정 악화에 미치는 영향이 금융위기보다 11.7배 정도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한국은 노령화가 재정 악화에 미치는 영향력이 금융위기의 34배에 달했다. IMF의 경고를 소홀히 들어서는 안 된다.

 사회복지 지출의 급증도 재정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2000∼2007년 사회복지 지출 증가 속도는 연평균 14.3%로 OECD 33개국 중에서 가장 빨랐다. 2007년에 사회복지 지출의 GDP 비중은 7.6%로 OECD 평균치인 19.2%에 비해 낮았지만, 1990년(2.8%)에 비하면 빠른 속도로 늘었다. 더욱이 정부는 올해 하반기에 장애인 연금을 도입할 예정이며, 장애인 장기요양보험 도입도 검토 중이다. 아직 선진국에 비해 복지지출 수준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복지수요의 폭증을 감안할 때 중장기적으로 재정에 상당한 부담요인이 될 것이다.

 사실 MB정부는 출범 초기에 작은 정부를 표방했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 등에서 제기된 무상복지, 반값등록금, 감세 철회 논쟁으로 인해 작은 정부 기조가 흔들리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야 모두 포퓰리즘적 정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표심 잡기가 작용한 탓이지만 재정 악화에 따르는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아야 한다.

 복지를 향상시키고 대학등록금을 인하하는 방법을 모색하되 재정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 많은 선진국은 만성화된 재정적자를 극복하기 위해 강력한 구조개혁을 추진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후유증으로 국민은 고통받고 있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잘나갈 때 지출을 줄여야 재정건전성을 지켜낼 수 있다. 그때가 바로 지금이다.

백웅기 상명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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