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Global] 미국에 ‘푸드 트럭’ 유행시킨 한인 셰프 … 로이 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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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고기 타코(Kogi Taco)’로 미 전역에 푸드 트럭을 유행시켰던 요리사 로이 최(41)가 이번엔 한국식 통닭과 수육 샌드위치를 메뉴로 개발해 미국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가 지난해 말 ‘한국식 호프집’을 컨셉트로 LA 인근 컬버시티에 문을 연 ‘A-프레임’은 손님이 하루 수백 명씩 몰리는 문전성시다. 로이 최는 “고기 타코가 한국식 포장마차라면 이번에는 한국 대학가 호프집을 염두에 뒀다”며 “통닭 한 마리를 놓고 호프를 마실 수 있는 왁자지껄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제는 길을 걷다 사인을 해줘야 할 정도로 저명인사가 된 로이 최를 A-프레임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LA중앙일보=최상태 기자

그는 셰프라기보다 스트리트 파이터(street fighter)에 가까웠다. 최신 힙합 트렌드를 줄줄이 꿰고 양팔에 문신과 짧은 머리를 한 그는 첫눈에도 아시안 파이터 같은 인상을 줬다.

●처음에 트럭 한 대로 시작했는데.

 “상상도 못했다. 지난 몇 년 엄청나게 성장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이런 목표를 세운 것도 아니었는데. 이런 게 성장의 묘미인 거 같다.”

●‘고기 타코’가 미 요식업계에 큰 변화를 줬다.

 “일부에서는 미국 음식문화를 바꾸었다고 말하더라. 아무튼 요식산업 변화에 에너지를 전달해줬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미 전역에 푸드 트럭 사업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아이디어를 뺏겼다는 심정이 들지는 않나.

 “아니, 전혀 없다. 오히려 경쟁하는 게 도움이 된다. 발전할 수 있고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으니까. 덕분에 미국인들이 한국 음식을 더 많이 알게 되고 찾게 된 것에 보람을 느낀다.”

 고기 타코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셰프 로이 최는 2009년 ‘본 에프티상’을 수상했으며 2010년 ‘푸드앤와인’이 선정하는 ‘최고 신인 요리사(Best New Chef)’, 미국 톱10 레스토랑에 선정됐다. 호텔·식당 예약사이트인 ‘가이오닷컴(Gayot.com)’은 고기 타코를 미 톱5 푸드 트럭 중의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이름이 많이 알려졌다. 달라진 게 있다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지금도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자정까지 하루 16~18시간씩 일한다. 유명해지고 상 받는 것은 별 관심이 없다. 돈을 많이 버느냐 마느냐의 문제도 내겐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모든 음식이 완벽하게 고객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요리과정부터 서빙까지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다.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 걸 보면 그 이상 행복한 것은 없다.”

●식당까지 열었는데 변화가 있나.

 “트럭에서 식당으로 옮겨오면서 부동산이나 각종 세금 등 고정비용이 크게 늘었지만 음식 질 관리와 철학은 변함이 없다. 청결한 식당, 맛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아무리 큰 식당이라도 고객을 잃게 마련이다.”

 힙합의 자유로운 정신을 좋아하는 그는 요리도 인생도 자유롭고 싶었다. 타인의 시선에 관계없이 문신을 하고 힙합 모자를 눌러쓰고 다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A프레임’에서는 어떤 메뉴가 가장 잘 팔리나.

 “한국식으로 바짝 튀긴 통닭과 수육 샌드위치가 가장 인기가 좋다. 메뉴당 23달러로 비교적 고가인데도 잘 팔린다. 통닭의 경우 미국인 10명 중 8~9명은 어떻게 만들었는지 물어본다. 자연스럽게 한국의 대학가 문화를 얘기할 기회를 얻게 된다.”

 로이 최의 한국식 통닭은 ‘미국인에 맞는’ 한국 요리다. 기름을 쫙 뺀 통닭에 후추와 소금을 뿌리고 잘게 썬 무와 계란 장조림을 페루산 매운 소스와 같이 내놓는다.

●수육 샌드위치는 어떤 것인가.

 “한국인들이 즐겨 먹는 도가니 수육을 샌드위치에 넣은 것이다. 우리 식당에서 가장 잘 팔리는 아이템이다. ‘미국인들은 수육을 못 먹을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음식 자체보다 어떻게 내놓느냐에 따라 다르다. 미국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자유롭게 해야 한다.”

●퓨전 요리인가.

 “아니다. 내 음식은 퓨전이 아니다. 한국인이 보기에는 이해 못하겠지만 한국의 오리지널 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이다. 다만 미국인이 좋아하는 질감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고기 타코를 한 입 먹는 순간 5000년의 한국 역사를 느낄 수 있다고 내가 믿는 것처럼 말이다.”

●고기 타코로 10대 레스토랑에 선정돼 새 식당을 여는 데 부담이 됐겠다.

 “상이나 명성은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고기 타코를 시작하면서부터 내 인생에서 남들의 인정, 상, 돈, 명예는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을 먹이는 게 내게는 가장 큰 의미로 자리 잡았다.”

●당신에게 요리는 무엇인가.

 “내게 요리는 무술을 배우는 것과 같다. 끝없이 정진해야 하는 점에서 말이다. 지금도 어떻게 만들까, 어떻게 먹일까, 어떻게 사람들 영혼을 풍성하게 할까 생각하게 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핵심 가치는.

 “청결한 식당과 정직한 맛, 성실한 노동, 고객에게 최상의 음식을 내놓는 것. 이는 식당의 규모가 작으나 크나 관계없이 똑같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많이 알려지고 큰 변화가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내가 달라지지 않았다고 자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셰프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돈을 벌고 유명하게 되려고 요리업계에 발을 딛지 말았으면 한다. 힘들고 돈은 많이 벌지 못한다. 그리고 끝없이 연구해야 한다. 요리를 사랑하고 이 음식을 남들에게 먹여 영혼을 풍성하게 하겠다는 일종의 사명감이 있었으면 한다.”

로이 최

두 살 때 미국으로 이민 와 LA 한인타운에서 성장했다. 세탁소·식당을 하는 부모를 따라 12번이나 이사를 다니면서 중·고교 때 가출과 싸움을 일삼는 방황기를 보내기도 했다. 캘스테이트 대학을 졸업했으며 스물다섯 살이 되던 1996년 요리에 인생을 걸기로 하고 세계 3대 요리학교인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 입학해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이후 뉴욕 유명 레스토랑을 거쳐 힐튼호텔에 입사해 경력을 쌓았다. 베벌리 힐튼 호텔 주방장에서 해고된 뒤 2008년 말 이동식 트럭 ‘고기 코리안 비비큐(Kogi Korean BBQ)’를 차려 미 요식업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지금은 고기 타코 푸드 트럭 회사와 알리바이, 비치우드, A-프레임 등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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