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끝낸 권혁세 … 첫 마디는 “가계대출·서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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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세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50일간의 ‘칩거’를 끝내고 외부활동을 재개했다. 검찰 수사가 일단락된 게 계기다. 권 원장은 23일 국회 경제정책포럼 조찬세미나에 참석해 ‘하반기 감독정책방향’을 밝혔다. 오후엔 서울 여의도에 있는 신한은행 지점과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 영등포 지부를 방문해 서민금융 실태를 점검했다.

 권 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예고 없이 금감원을 방문한 지난 5월 4일 이후 모든 대외활동을 자제해 왔다. 국회 출석 등 피치 못할 일정을 빼면 금감원 밖으로 나가는 일이 드물었다. 가끔 기자들과 마주쳐도 “‘금융강도원’으로 불리는 조직의 수장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며 입을 다물곤 했다. 그로선 원장 취임 뒤 한 달여 만에 맞은 ‘침묵의 봄’이었다.

 권 원장은 그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꽤 답답해했다고 한다. 저축은행 사태에 묻혀 금융회사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 등 본연의 업무가 지장을 받을 수 있다는 걱정을 주변에 토로하기도 했다. 그 답답함을 그는 ‘내부 기강 잡기와 사기 유지’에 주력하는 것으로 달랬다. 임원들에겐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치려면 저축은행 사태가 일단락된 뒤 제대로 된 반성문을 내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른 번 가까이 ‘구내식당 오찬’을 하며 직급·부서별로 직원과의 접촉을 늘리는 노력도 꾸준히 했다. 금감원은 그동안 은행·보험·증권 등 권역별로 이뤄지던 폐쇄적 인사시스템을 개방형으로 바꾸고 주요 업무를 부원장들에게 위임하는 등 자체 개혁을 시작했다.

 권 원장이 활동 재개의 키워드로 내놓은 건 ‘가계대출과 서민’이다. 국정 기조이기도 하지만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위해 둘 다 소홀히 할 수 없는 가치다. 그는 국회 세미나에서 “가계부채가 증가하는 구조적 원인으로 꼽히는 거치기간 연장 관행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퇴직연금과 신용카드 시장의 과당경쟁과 쏠림현상에 대한 선제적 대응도 강조했다. 은행 지점을 방문할 땐 “서민경제가 양극화돼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만큼 정부와 감독당국이 좀 더 신경을 쓰겠다”며 “불요불급한 대출은 줄이되 서민대출은 늘려 달라”고 주문했다. 신복위에선 “개인금융 재원 마련을 은행과 협의해 적극 협조하도록 하겠다”며 금융소외자 취업알선을 확대해 달라고 당부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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