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법인화 물건너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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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21일 경북대 인문대학 투표소에서 교수들이 대학 법인화에 대한 찬반 투표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21일 오후 대구시 북구 경북대 인문대학 2층 교수회의실. 교수들이 줄지어 투표장으로 들어섰다. 이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학교 법인화에 대해 찬반을 묻는 투표여서다. 경북대 교수회가 주관한 이날 투표에는 전임강사 이상 교수 1105명 중 64.2%인 709명이 참가했다. 696표의 유효투표(무효와 기권 제외) 가운데 86.9%(605명)가 법인화에 반대했다. 김형기 교수회 의장은 “이제 법인화를 포기하고 다른 발전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북대 법인화 작업이 벽에 부닥쳤다. 학생에 이어 교수들도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법인화는 사실상 물 건너 갔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대학 본부 측은 기회가 되면 다시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혀 논란의 여지는 남아 있다.

 경북대의 국립대학법인 전환 작업은 지난 3월 본격화했다. 대학에 법인화위원회와 그 아래 법인화연구단이 꾸려졌다. 연구단은 5월 법인화 연구안(案)을 내놓았다. 연구안에는 국가는 교육·연구의 질 향상과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경북대에 재정 지원을 하도록 했다. 지방자치단체도 재정 지원을 할 수 있게 하는 근거를 마련했다. 또 기초학문 등의 지원·육성에 관한 종합계획을 세워 시행토록 했다. 등록금은 2017년까지 동결하고, 이후에도 등록금 상한제를 실시해 일정 비율 이상 인상하지 못하도록 했다. 대학이 장기 차입이나 학교채(債)를 발행할 수 있고, 수익사업을 통해 학교에 투자할 수 있는 길도 터 놓았다. 이를 통해 우수 교수를 확보하고 연구기반을 다져 세계적인 대학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수회는 반발했다. 전국의 거점 국립대학을 법인화하겠다는 것은 고등교육의 미래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부산대·전남대 교수회와 연대해 반대운동에 나섰다. 정부가 예산을 지원한다지만 장기적으론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방 국립대 모두 스스로 재원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등록금이 오를 수 있고 교수들의 연구 여건이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경북대 김형기 교수회 의장은 “법인화 추진은 정부의 불확실한 재정 지원에 대한 과잉 기대를 바탕으로 정부 방침에 순응하려는 자세”라고 비판했다. 학생들도 가세했다. 이 대학 총학생회가 지난 2일 실시한 찬반투표 결과 참가 학생(1만354명) 중 84.8%(8776명)가 법인화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대학 본부는 지난 14일 법인화 논의를 중단했다. 이성준 기획부처장은 “학생과 교수의 반발이 커 더는 법인화 추진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동문들의 의견은 엇갈리지만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우세한 분위기다. 경북대 출신인 정모(45·회사원)씨는 “경북대가 경쟁력을 갖추려면 현 체제로는 안 된다”며 “옛 명성을 되찾고 세계적인 대학으로 도약하려면 시스템의 획기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글=홍권삼 기자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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