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北 '전기 철조망' 쳐놓고 개발하는 곳 가보니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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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 해양관광특구 개발지일대

북한의 함경북도 나선(나진·선봉)특별시에 대규모 해양관광특구가 들어선다. 이 관광특구는 2016년까지 3단계로 나눠 국제 휴양도시 형태로 개발된다. 온라인 중앙일보는 22일 이런 내용이 담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라선특별시 관광종합개발회사 개발계획’ 문건을 입수했다. 이달 9일 착공식을 가진 나선특별시의 특정 지구 개발계획이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비파도에 있는 엠페러오락호텔 전경

17쪽짜리 이 개발계획서는 중국 지안그룹(吉安集團)이 프리젠테이션 형식으로 만든 것이다. 지난해 7월 누군가에게 보고한 것으로 되어 있다. 중국어와 한글을 병행해 작성된 것으로 미뤄 북한 고위층에 보고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계획서가 작성된 다음달인 지난해 8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 지역을 경유해 중국을 방문했다.

지안그룹은 이 계획서에서 "나선시의 빠른 발전으로 중국·러시아 등의 관광객이 증가해 비파도 해안에 특색있는 관광산업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며 “조선 유일의 고급스러운 관광여가승지를 제공해 나선시의 인구유동·물류 등 기타산업의 발전을 이끌 것”이라고 밝혔다.

이 계획서에 따르면 나선특별시의 비파도 인근 해변 일대 15만㎡(4만5000평)를 해양레저시설과 고급빌라촌 등을 갖춘 복합 해양리조트로 개발한다. 4억8000만~8억8000만 위안(800억~1500억원)이 투입된다. 개발기간은 3~6년이다.

◇테라스형 빌라촌까지 갖춘 휴양특구=1단계로 3만㎡(9000평) 규모의 해변에 각종 레저를 즐기기 위한 기초시설이 건설된다. 부산 해운대의 절반 규모다. 1단계 공사에는 이 보고서가 작성될 당시 2000만~5000만 위안(33억~83억원)을 투입할 예정이었으나 이후 8000만 위안(133억원)으로 투자규모가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1단계 공사가 끝나면 관광보트와 요트계류장, 일광욕 벤치, 수상오토바이 시설, 해변 배구장, 휴식시설, 샤워실, 야외 바비큐 시설, 관광용품점 등의 부대시설이 들어선다. 망해여가구역(가로수길·돌의자·정자)과 해안선 보행도로구역 등 주변 환경도 정비된다.

2단계는 3만5000㎡(1만 평)에 1억5000만~2억5000만 위안(250억~400억원)을 들여 크루즈선 2척이 정박할 수 있는 계류장을 건설한다. 일본·러시아·중국 등 외국 관광객을 크루즈선으로 수송하기 위한 시설로 보인다. 또 2~3성급 호텔, 위락시설과 헬스장 등을 포함한 종합 여가오락회관, 음식 문화를 알리는 조선특색 미식회관(식당) 등도 마련할 계획이다. 1~2단계 공사는 2년 6개월 안에 완료할 계획이다.

3단계 공사에는 전체 투자비용의 절반 이상이 투입된다. 8만5000㎡(2만6000평) 면적에 2억5000만~5억5000만 위안(400억~900억원)을 쏟아붓는다. 객실 85개와 중소형 회의실·연회장 등을 갖춘 3~4성급 호텔을 세우고 해빈아파트라는 이름의 고급 빌라촌을 조성한다. 조감도에는 미국의 ‘베버리힐즈’에 버금가는 테라스형 빌라들이 늘어서 있다. 빌라 주변에는 4차선 넓이의 도로와 녹지가 조성된다.

◇해양관광지로서의 가치 인정받은 비파도=비파도는 이미 관광지로서 지리적·환경적 요건을 구비해 손쉽게 개발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이곳은 중국 훈춘·러시아 하산과 인접(각각 50km 정도)해 있다. 도로나 철도가 개통(나진항 기준)되면 1~2시간 안에 방문할 수 있을 정도로 접근성이 뛰어나다.

국제규모의 숙박 인프라도 마련돼 있는 상태다. 중국인을 대상으로 2000년 문을 연 5성급 엠페러오락호텔이 그것이다. 이 호텔은 홍콩자본이 2000년 비파도 일대에 대한 관광지로서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지은 것이다. 이 호텔에는 카지노를 비롯한 각종 유흥시설이 갖춰져 있고, 비파도와 동해바다를 굽어볼 수 있는 해변에 자리잡고 있어 풍광도 뛰어나다.
이 일대 경치는 아주 수려하다.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청정 해역으로 바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다. 바다를 따라 수 km의 모래사장이 길게 펼쳐져 있다. 뒤쪽엔 푸르게 우거진 나지막한 산이 솟아 있다. 해양관광과 등산 등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엠페러호텔을 찾았던 중국인들을 중심으로 이 지역의 풍광이 입소문을 타면서 '동북의 해상 낙원'으로 불린다.

북한 주민의 통행은 금지돼 있다. 탈북을 막기 위해 중국과의 접경지대에 철조망을 구축한 것과 달리 나선특별시에는 북한으로 통하는 대부분의 길목에 전기철조망이 쳐져 있다. 개방·개혁의 물결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1991년 이곳이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로 지정될 때부터 북한 고위급과 외국인의 출입만 허용됐다. 나선지역은 지난해 1월 특별시로 승격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나선특별시 개발 착공식(이달 9일)이 열린 뒤 "(나선지역 개발을 위해)특구를 더 과감하게 열라"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취재팀=이지은·김진희·유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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