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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꼬마 라디오 "골리앗 방송 한판 붙자"

중앙일보

입력

'방송'하면 거대 자본이 필요한 사업이고, 따라서 소수의 목소리보다는 거대 조직의 논리를 대변하게 마련이란 것이 일반적인 인식. 하지만 라디오, 그것도 소규모 청취반경의 저출력 라디오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크리스천 슬레이터 주연의 1990년 영화 〈볼륨을 높여라〉는 저출력 라디오의 매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낮에는 학교에 잘 적응 못하는 수줍은 성격의 전학생은 밤이면 1인 라디오 방송의 DJ로 변신, 학교·가정에 대한 10대들의 불만을 눈높이에서 토로하면서 인근 고교생들의 얼굴없는 우상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당시의 규정에 따르면 이같은 저출력 라디오는 미국 연방방송통신위원회(FCC)의 정식 면허를 받을 수 없는 '해적방송'. FCC는 극중에서 주인공의 라디오 방송을 단속하는 '악역'으로 등장한다.

요즘 미국 방송계가 저출력 라디오를 놓고 시끌벅적하다. 10년 전과 달라진 것이라면 FCC의 역할이 바뀌었다는 점. 그동안 '칼리지 라디오'라고 불리는 대학방송과 청취반경 76m이내의 극저출력 방송만을 허용, 사실상 저출력 라디오를 불허해온 FCC가 지난달 20일 비영리 단체를 대상으로 출력 1백와트 이하(일반 라디오는 통상 6킬로와트 이상)·청취반경 5. 6km 이내의 저출력 FM라디오 방송을 허용하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FCC의 이같은 결정은 '방송에 대한 공공의 접근기회 확대'를 주장하며 소규모 방송 허용을 끊임없이 요구해온 여론에 따른 것. FCC의 인터넷사이트에 올라온 저출력 라디오 관련 문의는 지난 한해만도 3만건이 넘었을 정도다. FCC는 이번 결정이 교회·학교·지역사회 단체에 독립적인 방송국 운영 기회를 제공, 방송의 소유와 내용면에서 다원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반면 기존의 대형방송사들은 이같은 결정에 강력히 반발, 전미방송협회(NAB)를 통해 반대 입법 청원, 법원 제소 등으로 FCC의 결정을 뒤집으려 하고 있다. NAB는 "FCC의 계획은 수백, 수천의 저출력 라디오 방송을 난립시켜 라디오 채널 전반에 심각한 간섭 현상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FCC측은 "인접 또는 공용 주파수 간에 엄격한 거리 제한을 두어 기술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일반 출력 라디오의 경우 미국의 주요도시 대부분에서 신규허가가 어려울 정도로 채널이 빽빽하게 들어찬 상태. 그 틈새를 비집고 '내 목소리'를 싣겠다는 숱한 소규모 비영리단체들의 바램을 과연 기존 대형방송사들이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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