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기증, 한 사람이 150명에게 새 생명 나눌 수 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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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침상을 죽은 자의 것으로 만들지 말고 산 자의 것이 되게 해 주십시오. 나를 기억한다면 나는 영원히 살 것입니다’ 미국의 한 시인은 그의 사후 기증에 대한 숭고한 의미를 이 한 구절에 담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나눔인 ‘인체 기증’. 중앙일보헬스미디어와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이하 지원본부)는 인체조직 기증이 가진 나눔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3회에 걸쳐 ‘Live forever’ 캠페인을 전개한다.

지난 16일 서울성모병원 정형외과 정양국 교수(왼쪽)가 오른쪽팔에 뼈암이 발생해 뼈 이식수술을 받은 길민국(12·가운데)군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사진=프리랜서 신승철]

화상·암·당뇨 환자, 도움 애타게 기다려

지난해 8월, 친구들과 텀블링을 하던 민국(12)은 어깨에 통증을 느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통증은 시간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았다. 뒤늦게 찾아간 병원에서 모자는 골육종 2기라는 진단결과를 받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지옥에 서 있는 것 같았죠.” 민국이 엄마 신효순(39·인천 연수동)씨의 말이다.

 암덩어리는 아이의 오른쪽 팔 윗부분 주변 조직까지 침범해 있었다. 다행히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면 생명은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잃어버린 팔의 재건이 문제였다. 종양 제거를 위해 뼈를 잘라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식받을 뼈 조직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종양 제거수술은 시간을 다투는 일이어서 마냥 기다릴 수도 없었다.

 집도의인 서울성모병원 정형외과 정양국 교수는 “민국이에게 맞는 뼈를 구하지 못하면 금속재질을 끼워 넣어야 하는데 다른 조직과 잘 맞물리지 않아 분리되거나 부러지는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평소 밝고 긍정적인 성격의 신씨도 아들이 제대로 팔을 쓸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함을 떨칠 수 없었다. 이때 누군가가 기증한 뼈가 나타났다. 그것도 크기나 형태가 민국의 뼈와 잘 맞았다.

  “기증한 분은 45세의 이름도 모르는 여성이에요. 정말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그래서 저도 조직기증을 결심했어요. 이것만이 그분께 고마움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신씨)

조직 이식 필요한 사람 300만 명

모든 사람이 민국이처럼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선 기증된 조직이 턱없이 부족해서다. 우리나라 인체조직 기증률은 0.06% 수준. 인구 100만 명당 3.3명에 불과하다. 유교적 통념과 막연한 두려움, 복잡한 기증 절차가 그 이유다.

 지원본부에 따르면 현재 조직기증이 필요한 국내 환자는 300만 명에 달한다. 피부이식이 필요한 화상환자, 암치료 후 뼈나 조직의 재건이 필요한 환자, 당뇨나 협심증 등으로 새로운 혈관 이식이 필요한 환자 등 다양하다.

 이렇게 절박한 수요가 많지만 국내 수급은 요원하다. 국내에서 필요한 인체조직의 75%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 중 뼈 조직이 6만3772개로 가장 많고, 건(힘줄)이 1만289개, 피부 7766개로 뒤를 잇는다(2009,식약청).

 지원본부의 박창일 이사장은 “수입에 필요한 경비와 관리비로 수입 조직의 가격이 낮게는 2~3배, 많게는 10배 이상 비싸다”며 “연 206억원의 외화가 낭비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외국서 수입하면 품질 안심할 수 없어

인체조직기증이 활발한 나라는 미국·스페인·영국이다. 조직의 자체 수급은 물론 수출도 하고 있다. 하지만 자국 우선 공급을 원칙으로 하므로 잉여제품만을 수출한다. 이식재의 품질을 보장할 수 없고, 감염 경로도 확인할 수 없는 맹점이 있다.

 기증문화가 정착한 스페인은 죽음을 생명 순환의 고리로 여긴다. 실제 국민 대부분이 적극적으로 기증에 참여하고 있다.

  강호(56) 목사는 10년 전 16살 아들(고 강석민)의 장기와 조직을 기증해 8명의 생명을 구했다. 강 목사는 “내 아들의 장기와 조직을 받은 분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분들이 아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아들의 뼈와 피부로 세상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행복하다.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인체조직기증은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는 일이다. 한 사람이 최대 150명에게 새 생명을 나누어 줄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누군가로부터 새로운 삶을 선물 받을 수 있다.

글=이나경 기자
사진=프리랜서 신승철

◆인체조직=뼈·연골·근막·피부·양막·인대·건·심장판막·혈관 등 9가지를 말한다. 조직기증은 본인이 생전에 기증 희망 의사를 밝혔거나, 사후 보호자가 동의한 경우에 가능하고, 사망 후 15시간(냉장 안치 시 24시간) 이내에 진행돼야 한다. 기증된 인체조직은 무균상태에서 채취·가공·처리·보관한다.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인체조직 기증 활성화와 관리를 위해 정부의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사단법인. 저소득층 화상환자에게 피부이식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후원계좌: 신한은행 100-024-767089. 인체조직기증 서약은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 홈페이지(http://www.kost.or.kr/support/hope.asp)에서 온라인 등록이 가능하고, 희망등록신청서를 다운받아 작성 후 02-794-2641(팩스)로 보내주면 된다. 문의 1544-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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