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도 싫고 친구도 싫고 … 성장기 아이 붙들어 매는 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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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한 빌 게이츠는 2007년 한 비즈니스 포럼에서 고민을 털어놨다. 10세인 딸이 정원 꾸미는 게임에 빠져 하루 평균 2~3시간씩 컴퓨터 앞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눈이 벌게 질 정도로 게임에 몰두하는 딸을 위해 빌 게이츠는 결국 게임시간을 주중에는 45분, 주말에는 1시간으로 제한했다.

성장기 아이에게 게임중독은 건강에 ‘적신호’를 의미한다. 서울성모병원 정신과 김대진 교수는 “게임에 중독된 아이는 밥도 먹기 싫어한다”며 “식욕부진에 따른 영양불균형 때문에 발육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해악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성장기 아이가 게임에 빠졌을 때 생길 수 있는 건강 트러블을 알아보자.

성인 돼도 ‘여전히 어린이’

게임을 하면 즐거움과 쾌락을 주는 행복호르몬 ‘도파민’의 분비량이 증가한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뇌가 더 많은 도파민을 원한다는 점이다. 더 자극적인 게임을 찾게 된다는 뜻. 김대진 교수는 “게임을 하면서 느끼는 쾌락의 강도가 세질수록 이를 조절하는 능력은 떨어진다. 결국 게임할 때 외에는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없어 중독된다”고 설명했다.

게임에 중독된 아이는 공격적이고 충동적으로 변한다. 또래 집단과 어울리지 못하고 우울감도 잘 느낀다.

강북삼성병원 소아정신과 신동원 교수는 “사회성은 다른 사람의 표정을 직접 읽으며 형성된다”며 “게임만 하면 또래집단과 잘 어울리지 못해 나이는 18세가 되더라도 사회성 나이는 12세 정도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심한 경우 성인이 돼서도 이성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못 하기도 한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의 연구결과는 게임 중독의 정서적 폐해를 보여준다. 연구진은 2007~2009년 2년간 싱가포르에 있는 12개 초등학교 3034명을 대상으로 게임시간과 공격성·충동성·사회부적응·우울감의 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주당 게임시간이 24시간 이상인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모든 면에서 수치가 1.5배 정도 높았다(『미국소아과학회지 2011년』).

수면부족 → 폭식 → 비만으로 이어져

게임에 몰두하면 잠자는 시간이 줄어든다. 수면부족은 비만의 원인이 된다.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안철우 교수는 “수면 시간이 부족하면 식욕을 촉진하는 호르몬 ‘그렐린’이나 ‘렙틴’이,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과 함께 작용해 폭식을 유도한다”고 말했다. 수면의 양이 식욕을 통제하는 호르몬 수치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부족한 잠은 우리 몸의 신진대사 전체를 흔들기도 한다. 어린이는 하루만 잠이 부족해도 호흡과 소화 같은 에너지 소비활동이 5~20% 정도 줄어든다. 혈당은 높아지며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 분비가 많아진다(『미국임상학저널 2011년』).

 어린 나이에 대사증후군에 걸릴 수도 있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조비룡 교수는 “게임을 하면서 과자만 먹는 것은 신체활동이 줄어들고 필수영양분은 섭취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결국 복부비만·고혈압·고혈당 같은 위험요인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사증후군을 방치하면 뇌졸중이나 심장질환·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게임 화면을 가까운 거리에서 오랫동안 보면 근시가 생길 수 있다. 눈 깜빡거림이 거의 없을 정도로 게임에 집중해 안구건조증도 생긴다. 조비룡 교수는 “좋지 못한 자세로 게임을 하기 때문에 관절에 무리가 가기도 한다”며 “아이는 어른보다 유연해 증상이 더 늦게 나타나지만 이것이 더 건강하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권병준 기자

자녀의 게임중독을 예방하려면

· 게임시간이 하루에 2시간 이상 넘지 못하게 한다
· 컴퓨터는 거실에 두고 가급적 주말에만 하게 한다
· 지나치게 잔인하거나, 아이템을 구매하는 게임은 자제시킨다
· 부모의 주민등록번호·신용카드 등을 도용하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 게임이 아닌 주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흥미를 끌 다른 방법을 고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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