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격! 리허설 ④ 오늘 콘서트 여는 크로스오버 테너 박종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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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종호의 리허설 현장. 그는 공연장 밖에선 선교의 사명을 이어가는 사역자이기도 하다. 공연 수익금의 상당수가 아프리카 지역의 우물·병원 짓기 등에 쓰인다. [강정현 기자]


공연은 공연이고 음악은 음악이다. 크로스오버 테너 박종호(49)는 이 심드렁한 동어반복과 씨름해 온 뮤지션이다. 그는 서울대 성악과 재학 시절 실기시험에서 모두 A 학점을 받았을 만큼 출중한 성악가였다. 동기생 조수미와 종종 비교될 정도였다. 하지만 대학 4학년 때 삶이 뒤집혔다. 성악을 접고 CCM(현대 기독교 음악) 가수로 방향을 틀었다. 87년 데뷔해 20여 년 간 20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팔린 앨범이 200만장을 넘는다. 가스펠 가수로 맨 꼭대기에 올라선 셈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고민이 있다. 가스펠을 하나의 음악 장르로 받아들이는 서구와 달리 국내에선 특정 종교의 음악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스펠도 그저 똑같은 음악인데 대중들의 선입견이 매우 강했다”고 했다. 그래서 택한 게 ‘크로스오버’다. 장르를 가로지르는 ‘교차로’ 음악이다. 성악을 익혔고, 가스펠을 불렀고, 팝을 이해하고 있는 그로선 음악의 자동차를 몰고 어디로든 뻗어갈 수 있었다.

 2008년 첫 크로스오버 음반 ‘당신만은 못해요’를 냈다. 김종환·박완규 등 대중가수가 대거 참여했고, ‘무너진 가정을 회복시키자’는 보편적 메시지를 담았다. 이 음반은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대중의 마음까지 파고들었다. 지난해부터는 뮤지컬 등의 장르를 혼합해 ‘크로스오버’ 공연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공연은 공연이다.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감동이 다를 순 없다. 감동은 하나다”라고 했다.

 박종호는 13~1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아름다운 세상’이란 타이틀로 콘서트를 펼친다. 공연을 닷새 앞둔 8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연습실을 찾았다. 그의 콘서트는 관객을 압도하는 규모의 스케일로 유명하다. 이번에도 250명에 이르는 합창단과 50인조 오케스트라가 초대형 무대를 꾸민다.

 연습실은 아담했다. 건반·베이스·기타·베이스 등 최소한의 악기 편성으로만 우선 콘서트에 올릴 곡들을 매만지고 있었다.

 “마디 수를 좀 늘려볼까.” “건반은 맨 마지막에 좀 더 길게 끌어보자.” “왜 악기끼리 소리가 안 맞니?”

 그의 나긋나긋한 지적을 세션들이 즉시 받아들이면서 공연 레퍼토리가 제 모습을 갖춰갔다. 그들이 소통하는 언어는 오직 음악이었다. CCM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그는 “가스펠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라도 음악을 최고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크리스천의 언어로만 노래하지 않고 일반인이 들어도 따뜻하고 아름다운 얘기를 들려주자는 게 제 공연의 목표에요. CCM이라고 해서 세상과 벽을 칠 이유는 없어요. 공연에서만큼은 보편적인 음악을 들려줄 생각입니다.”

 이런 바람이 통한 걸까. 기독교인이 아닌데도 그의 공연장을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CCM이란 현실적 한계에도 그간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예술의전당 등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번 세종문화회관 콘서트 역시 이틀간 7000석이 싹 팔렸다. 공연마다 2~3억씩 제작비를 쏟아 붓는 열정이 일궈낸 결과다. 이 ‘교차로’의 뮤지션은 가스펠 가수인가, 성악가인가, 팝 가수인가, 선교사인가. 아니다. 무대 위의 박종호는 그냥 ‘공연’이자 ‘음악’이다. 문의 1544-1555.

글=정강현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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