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형제를 주신 까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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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호 31면

“바쁘냐?” 어머니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왜 그러세요? “선옥이가 너를 너무 보고 싶어 해서 말이다.”

삶과 믿음

지난해 말 배가 아프다던 누이는 저린 다리를 부둥켜 안고 쓰러졌다. 심장대동맥 박리(剝離)였다. 예정된 다섯 시간을 넘기고도 모자라 세 시간을 보탠 길고 긴 수술. 주치의는 수술이 길어진 이유를 지혈이 되지 않아서였다고 설명했다. 수술 중 너무 많은 피를 흘려 혹 뇌세포에 이상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불안한 말도 전했다. 이어 중환자실에서 회복실로, 그리고 일반병실로 돌아온 누이는 그때부터 걱정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먼 데를 쳐다보고 병실 밖 골마루 운동을 끝내고는 엉뚱한 병실을 찾아들기도 했다. 어머니가 떠먹이는 한 숟갈의 밥을 몇 번 우물거리다 국그릇에다 확 뱉어 버리곤 했다. 모두들 불안한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 변의(便意)를 느낀 누이를 화장실로 안내했을 때는 들어서자마자 환자복에다 일을 치르기도 했다. 영락없는 치매환자였다. 뇌 손상이 틀림없었다.

그런 누이가 깜박 졸더니 오빠는 어디 갔느냐며 나를 찾았단다. 어머니는 타박을 놓았다. “너, 자다 꿈꿨냐?” 그러자 말없이 창밖을 향하더니 한참 있다 다시 되묻더란다. “네 오빠는 지금 강의로 얼마나 바쁜데…. 어제 다녀갔지 않았느냐”는 말에 시무룩해지더니 또다시 나를 찾았단다.

놀란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병원으로 내달았다. 입원실로 들어서는 나를 퀭한 눈으로 쳐다본다. “오빠 찾았어?” 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무슨 말 하려고?” 어머니는 더욱 불안한 눈초리로 쳐다본다.

뜸을 들이던 누이가 어눌한 소리로 말한다. “오오빠, 사으ㄹ·합니다.”
“그래 그 말 하려고 찾았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누이를 와락 끌어안았다. “오냐, 나도 우리 선옥이 사랑한다.” 그리고 누이를 안은 채 기도했다. “하나님, 내 누입니다. 속히 회복시켜 주셔서 우리 행복하게 살게 해 주세요. 우리 더 사랑하고 살고 싶습니다.” 지켜보고 있던 어머니는 눈시울을 붉혔다. 따라나선 아내도 눈물을 훔쳤다.

평소에 눈에 띄지 않던 성경구절이 마음 속에 살아 꿈틀거린다.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잠언17장17절)
그날 밤 집에 돌아와 늘 하던 대로 감사 일기를 썼다.

1. 누이가 죽지 않고 살아있음이 감사하다. 의사는 천운(天運)이라 했다.
2. 매제가 보여준 위기 대처 능력에 감사하다. 머뭇거려 30분 만 늦었어도 누이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3. 사랑고백으로 가족애를 깨닫게 해 줘 감사하다. 형제 아니고 누가 이런 아름다운 고백을 나눌 수 있겠는가.
4. 누이를 살려준 의사와 간호사에게 감사하다. 그들이 내 누이 살리려고 그 어려운 공부와 수련을 했다.
5. 하루도 멈추지 않고 뛰어준 심장에 감사하다. 하루 10만 번을 뛰면서도 지치지도 않고 불평 한마디 없다. 와!
심장에 조용히 손을 얹어본다. 쿵쿵쿵쿵…. 내가 살아있다. 행복이다.



송길원 가족생태학자. 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 대표로 일하고 있다. 트위터(@happyzzone)와 페이스북으로 세상과 교회의 소통을 지향하는 문화 리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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