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Special] 해러즈백화점·교황청 빛낸 가구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가이

중앙일보

입력 2011.06.11 01:30

업데이트 2011.06.11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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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가구 디자이너 중 한 사람인 크리스토퍼 가이(52). 라스베이거스월드마켓센터(WMCL)에 의해 ‘2011년 디자인 아이콘’으로 선정된 그는 클래식과 모던, 간결함과 화려함, 단아함과 세련미 등 대극적 요소와 함께 시대를 읽는 가장 현대적인 가구 디자이너로 평가받고 있다. 사그라져 가는 전통의 가치를 현대적인 미학에 대입시켜 새롭게 빛나게 만든 것이다. 예술 작품으로 대접받는 그의 가구는 라스베이거스 윈 호텔, 베벌리힐스 포시즌, 영국 해러즈 백화점 등 럭셔리 공간에서부터 ‘007 카지노 로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 영화, 지난해 리비아에서 열린 EU-아프리카 정상회의, 로마 교황청에서까지 폭넓게 볼 수 있다. 싱가포르에서 작업하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디자인하는 크리스토퍼 가이를 베벌리힐스에 있는 그의 쇼룸에서 만났다.

글=LA중앙일보 이은영 기자
사진=LA중앙일보 김상진 기자

크리스토퍼 가이

1960년 영국 태생.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93년 거울 프레임 회사인 ‘해리슨&질’을 설립해 거울 디자이너로서 첫발을 디뎠다2004년 영국 인테리어디자인협회가 선정한 ‘주목할 만한 디자인상’을수상. 2006년 자신의 이름을 딴 가구업체 ‘크리스토퍼 가이’를 설립했다.

크리스토퍼 가이의 작품들

크리스토퍼 가이 디자인의 심볼은 바로 ‘크리스-X(Chris-X)’다. 가구 다리 네 개 중 두 개를 X자형으로 교차한 디자인으로 마치 여성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마호가니 위에 은으로 마감한 소파. 4139달러.

크리스-X를 응용한 식탁 의자. 1872달러. 역시 크리스-X 다리를 사용했다.

손으로 조각한 뒤 금으로 마감한 거울디자인. 5528달러.

나무 패널에 여성의 몸을 손으로 조각한 작품. 1038달러.

●당신의 디자인 철학은 무엇인가.

 “20여 개 다양한 인종의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들에게 우아한 가구를 고르라고 하면 선택은 거의 비슷하다. 난 인종과 국적을 떠나 좋아하는 유니버설한 디자인을 추구한다. 이젠 국가 중심에서 벗어나 국제적인 시대다. 나의 디자인 철학의 핵심은 ‘시대, 지역, 국가, 인종을 떠나 글로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다. 그 답은 우아함이다. 우아함은 내가 디자인한 모든 가구에 숨어 있는 핵심 철학이다.”

●우아함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그것은 곧 ‘곡선의 미’다. 내 가구에서 사람들은 곡선적인 ‘여성미’를 먼저 느낀다. 직선적인 가구 라인은 디자인하기 쉽다. 하지만 난 곡선을 고집한다. 직선에 비해 힘들지만 디자인의 영역이 넓고 흥미롭다. 곡선에 대한 영감의 원천은 ‘여성의 몸’이다. 내가 디자인한 가구에서 아름다운 여성의 힙 라인과 다리를 우아하게 꼬고 앉아 있는 여인의 형상이 연상되는 것은 이런 이유다.”

●흔히 당신 가구는 ‘클래식한 모던함’으로 정의되는데.

 “클래식이든 모던 스타일이든 우아함을 표현할 수 있다. 함께 섞여도 마찬가지다. 그 우아함은 눈으로 보는 것뿐 아니라 각종 분위기에 맞는 다목적성과 마감, 재질로 재해석돼 고객들이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나라, 국가, 인종을 아우르는 우아함을 아름다움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부동산 침체로 가구 업계도 불황이다. 그런데도 매년 30~40%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비결은.

 “간단히 말해 국제적인 감각이다. 어느 나라 어떤 고객도 만족시킬 수 있는 글로벌한 디자인이 바로 마케팅의 핵심이다. 예전에는 어느 나라에 가면 그 나라 고유 디자인의 제품을 구입했다. 하지만 세계화되면서 어느 나라에 가도 구입하는 물건이 비슷한 시대가 됐다.”

●비용이 많이 드는 수작업을 고집하고 있는데.

 “디자인에 따라 전통적인 수작업도 얼마든지 모던한 모습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클래식과 전통이 결코 낡거나 지루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싱가포르에 본사가 있지만, 수공예 기술이 뛰어나고 고급 마호가니가 있는 인도네시아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현재 회사에 1500명의 기술자가 전통적인 방법으로 현대적 가구에 손 조각을 하고 있다.”

●고객 맞춤형 서비스에 주력하는 이유도 그것인가.

 “오스카 시상식 레드카펫을 보면 어쩌다 유명 디자이너의 드레스를 두 여배우가 같이 입어도 장신구, 핸드백 등에 따라 스타일은 확연히 달라진다. 내 가구도 마찬가지다. 소파를 보자. 마감재, 색상, 소재, 스타일 등 고객은 소파를 사면서 수십 가지를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여기에 조각품·조명 등 많은 소품을 더하면 같은 가구도 풍기는 분위기는 천양지차다. 소파 한 점을 사지만 고객은 크리스토퍼 가이 가구를 최대한 즐길 수 있다. 크리스토퍼 가이의 가구 및 소품 수는 300개 이상이다. 대저택이라도 크리스토퍼 가이로 집의 인테리어를 완벽하게 끝낼 수 있을 만큼 집에 필요한 모든 아이템이 있다. 이런 서비스로 고객 맞춤 디자인을 완벽하게 실현하고자 했다.”

●올해 인테리어 경향은 원색이 강세라는데.

 “내 가구의 주요 색상은 중간색이다. 유행을 따르면 금방 가구가 싫증날 수 있다. 중간색은 크리스토퍼 가이가 풍기는 여성스러움, 우아함, 깔끔함을 가장 잘 구현해 낼 수 있는 색상이기도 하다. 원색은 소품에 적절히 사용하고 있다.”

●거울 디자이너로서 시작했다. 지금도 거울을 중시하고 있다.

 “영화에서 주연배우가 많으면 오히려 돋보이기 어렵다. 집도 마찬가지다. 모든 가구와 소품들이 화려하고 번쩍거리고 강한 색상이라면 집의 아름다움을 찾기란 쉽지 않다. 간결한 클래식 가구가 있다면 큰 샹들리에로 시선을 고정시켜 가구와 샹들리에가 모두 돋보이게 하는 게 좋다. 거울 아트워크는 이런 면에서 가장 효과적인 인테리어 소품이다. 거울 하나로 집안 분위기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 거울이 아니라 거울 아트워크로 불리는 이유다.”

●크리스토퍼 가이가 한국인 집에 어울릴까.

 “한국인들이 디자인에 높은 안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현대적이면서 클래식한 크리스토퍼 가이가 한국인들의 이런 안목에 잘 맞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높은 천장에 맞는 오버사이즈 디자인이 많기 때문에 아파트에서 많이 살고 있는 한국의 라이프스타일과의 접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가구를 사기 전에 상담이 필요한 이유다.”

●디자인의 영감은 어디에서 솟나.

 “항상 여행에서 영감을 받는다. 어떤 나라의 특별한 전통을 디자인에 가미하는 게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합이 디자인의 기초를 이룬다. 내가 추구하는 세계화는 각 나라의 전통을 초월해 유니버설한 목표에 이르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가이 대표적 쇼룸

2010년 9월 파리에서 열린 가구박람회 ‘메종 에오브제(the Maison & Objet)’에 전시된 크리스토퍼 가이의 쇼룸(위)은 우아함을 가장 잘 표현한 컬렉션으로 영국 왕세자 찰스와 커밀라 파커 볼스의 결혼식을 기념하기 위해 디자인됐다. 이 쇼룸은캐브리올(굽은 가구 다리), 붉은 카멜 백 소파, 검은쿠션, 모던한 오토만(팔걸이 없는 보조의자), 검은라커칠 사이드 테이블과 나뭇가지 벽 램프, 거울 아트워크가 특징이다. 아래쪽은 베벌리힐스의 쇼룸.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시대를 초월한 패션 아이콘들이 영감의 원천이다. 1920~1930년대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과 50~60년대 오드리 헵번의 스타일에서 끊임없이 가구 디자인의 영감을 얻고 있다.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으며 그윽한 ‘우아함’을 구현해 낸 그들의 모습을 가구 디자인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가이의 심벌은 ‘크리스-X’다.

 “‘크리스-X’는 네 개의 가구 다리 중 두 개를 X 모양으로 교차한 디자인이다. 마치 여성이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모습을 연상시키며 크리스토퍼 가이의 상징처럼 됐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코르셋으로 한껏 조여진 스칼렛 오하라의 가는 허리선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어쨌거나 미국·중국·유럽에서 판매되고 있는 모든 가구 컬렉션에서 크리스-X 디자인을 이용한 가구가 베스트셀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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