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몽골족 숨지게 한 운전사 사형 선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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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에서 유목민을 트럭으로 치어 몽골족의 대규모 시위 사태를 부른 한족 운전기사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홍콩 명보(明報)는 9일 내몽골 시린궈러멍(錫林郭勒盟) 중급인민법원이 8일 몽골족 유목민 모르건(莫日根)을 석탄 운반용 트럭으로 치어 숨지게 한 죄로 운전기사 리린둥(李林東)에게 사형을, 조수 루샹둥(盧向東)에게 무기징역을 각각 선고했다고 보도했다. 공개적으로 진행된 이날 재판은 모르건과 피고인들의 가족을 포함해 160여 명이 방청했다.

 석탄을 운반하던 이들은 지난달 10일 시린궈러멍의 시우치(西烏旗) 초원에서 석탄 차량이 일으키는 분진과 소음에 항의하며 길을 막은 유목민 모르건을 트럭으로 친 뒤 145m가량을 끌고가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중국의 단일 행정구역으로는 가장 많은 7414억t의 석탄이 매장된 네이멍구에서는 최근 탄광 개발 붐이 일면서 초원을 생활 터전으로 삼아온 몽골족 유목민들과 탄광업자들 간의 마찰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모르건 사건은 오랫동안 억눌렸던 몽골족의 민족 감정을 분출시키는 도화선이 됐다. 사건 직후 몽골족 유목민과 학생들은 2000명이 넘는 시위대를 규합해 반정부 구호를 외쳤다. “한족은 초원을 떠나라” “공산당 반대” 같은 반체제성 구호도 등장했다.

 몽골족의 시위에 놀란 공산당 지도부는 즉각 최고 심의기구인 정치국 회의를 소집하는 등 비상하게 대응했다. 정치국은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국가주석, 원자바오(溫家寶·온가보) 총리, 시진핑(習近平·습근평) 국가부주석 등 상임위원 9인과 15명의 부총리급 인사로 구성됐다. 명실상부한 중국 최고 권력기구다.

네이멍구 자치구를 총괄하는 후춘화(胡春華·호춘화) 당서기도 사건 발생지의 민족 학교를 찾아가 엄정한 법 집행을 약속하는 등 초기 진화에 애썼다. 중국 당국은 또 사건과 관련된 탄광을 폐쇄하고 유목민들의 민원을 수렴해 지원책을 내놓는 등 사태 악화를 막기 위해 총력전을 폈다.

 이날 판결은 사건이 발생한 지 1개월도 안 돼 나온 것으로 민족 분규 가능성에 크게 놀란 중국 당국의 강력한 수습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홍콩 언론들은 평가하고 있다. 시험대에 올랐던 후 서기도 민족 분규로 사태가 악화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해 위기 국면을 벗어났다. 티베트에서 20년간 공직 생활을 하다 네이멍구로 옮겼던 후 서기는 화약고나 다름없는 소수민족 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정용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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