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경으로 끝난 ‘벤처 여왕’ 순애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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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본지 2004년 1월 30일 지면.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가진 ‘벤처 신데렐라’가 전신 장애를 극복하고 미국에서 부장검사까지 된 남성의 사연을 TV에서 보고 반해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이른다. 게임업체 웹젠의 전 사장 이수영(46)씨와 재미동포 정범진(미국 이름 알렉스 정·44)씨 이야기다.

 2004년 결혼 발표 당시 이씨는 무용과 출신으로 게임업체를 코스닥에 상장하며 거부가 된 미모의 여성 사업가로 소개됐다. 정씨도 조지워싱턴대 로스쿨 재학 중 교통사고를 당해 목 아래가 모두 마비된 뒤 뉴욕 브루클린 검찰청 최연소 부장검사에 오른 인간 승리의 주인공으로 주목을 받았다. 당시 두 사람의 영화 같은 사랑 이야기는 ‘벤처 여왕의 순애보’로 화제가 됐다. 그러나 두 사람의 순애보는 7년여 만에 이혼 소송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가정법원 가사3부(부장 박종택)는 지난 1일 “이씨는 정씨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불하고 이혼하라”고 판결했다. 먼저 이혼 소송을 낸 쪽은 정씨였다. 그는 지난해 3월 “이씨는 결혼 후 미국에 오는 횟수가 줄었고 내 장애 상태에 대해서도 배려가 부족해 큰 고통을 겪었다”며 위자료 10억원과 재산분할(20억원)을 청구했다. 이에 맞서 이씨는 “정씨가 재산을 노리고 결혼했다”며 위자료 10억원을 청구했다.

이수영씨가 낸 책.

 법원은 두 사람이 파경에 이른 책임이 주로 이씨에게 있다고 봤다. 이씨는 미국 방문 때도 대부분의 기간을 정씨의 집이 아닌 호텔에 머무르면서 몸이 불편한 정씨가 찾아오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정씨를 길에 혼자 둔 채 호텔로 가버리거나 정해진 시간에 보조 장치 착용을 돕지 않아 정씨가 신체적·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두 사람의 관계가 나빠진 데는 이씨의 소송 문제도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정씨 측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정씨와 사귈 당시 웹젠의 초기 투자자들과 민·형사 소송 중이었다. 정씨 측은 재판 과정에서 “이씨의 재판 때마다 미국에서 휴가를 내고 와 방청하고 친분 있는 한국의 검사들에게 사건 처리를 부탁하는 등 그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도록 적극적으로 도왔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또 “무혐의 처분이나 선고유예, 승소 등으로 소송이 마무리되자 이씨가 미국에 자주 오지 않았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이씨 측은 “정씨가 미국에 함께 살 집을 구할 돈을 송금하기를 거부하자 불만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며 “정씨가 검사에서 뉴욕시 판사로 자리를 옮긴 직후인 2006년 일방적으로 이혼을 통보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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