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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백선엽은 힘주어 말한다 ‘자유에 공짜는 없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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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1952년 12월 방한한 미국 대통령 당선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경기도 광릉의 수도사단을 시찰하는 모습이다. 맨 앞줄 오른쪽부터 이승만 대통령, 아이젠하워 당선자, 백선엽 육군참모총장이다.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 3권은 야전 지휘관에서 육군참모총장으로 자리를 옮긴 백선엽 장군의 활약상을 담았다. 미 사진전문잡지 라이프의 작품이다.


백선엽(91) 예비역 대장. 한국 현대사의 거인이다. 61년 전 한국전쟁의 격렬했던 전투에서 수많은 승리를 일궈냈다. 국가의 존명이 달린 역사의 현장에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자유에 공짜는 없다(Freedom is not free)’는 말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2010년 1월 4일부터 올해 2월 28일까지 본지에 1년 2개월 동안 실리며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던 백 장군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내가 겪은 6·25와 대한민국’이 단행본으로 엮여 나왔다. 백 장군의 회고록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중앙일보사)가 6·25 61돌을 앞두고 모두 3권으로 완간됐다.

백선엽

 ◆전쟁사를 다시 썼다=『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는 무엇보다 61년 전 이 땅에서 벌어진 참혹한 전쟁의 기록을 생생하게 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정부의 공식 출판물에 실린 전쟁사는 말 그대로 ‘공식적’이다. 전쟁 중에 오간 전투 명령서 등에 따라 벌어진 전투를 엄격하게 옮기는 공적인 역사 간행물, 즉 ‘공간사(公刊史)’는 전쟁의 이면을 잘 보여주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부대의 이동과 교전의 기록, 작전 상황 등에 대한 기록이 상세하지만, 그런 전투를 수행하는 지휘관의 번민과 고뇌를 다 담을 수는 없다.

 백 장군의 회고록은 전쟁에 임하는 지휘관의 당시 생각과 느낌, 승리냐 패배냐를 가르는 전선에서 실제 내렸던 판단 등을 그대로 담아내며 전쟁의 속내를 펼쳐 보인다. 공간사를 ‘뼈대’로 본다면, 이 책은 그 앞과 뒤를 채우는 ‘살’에 해당한다.

 6·25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실제 전선을 헤집고 다가섰던 적군의 역량이 대부분 김일성 군대가 아닌, 중공군이었다는 서술 등은 전쟁의 성격을 아예 달리 보게끔 만들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존망이 걸렸던 대구 북방 다부동 전투부터, 평양 진격과 탈환, 중공군 참전과 첫 조우전, 국군만을 노린 중공군과의 잇따른 싸움까지 전쟁의 주요 국면에 우뚝 섰던 백 장군의 시야에서 자세하게 그려졌다.

 ◆왜 백선엽인가=개전 초기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완료 때까지 벌어진 모든 주요 전투에 백선엽 장군의 이름은 반드시 등장한다. 특히 당시 전쟁의 주요 흐름을 바꾸는 국면(局面) 전환의 전투 지휘관이 바로 백 장군이다. 그는 한국을 지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올라선 미군들이 가장 신뢰하며 존중하는 한국군 지휘관이었다. 따라서 개전 초반의 낙동강 교두보 전투부터 그는 국면전환의 전투에서 항상 진두에 섰고, 승리를 거뒀다.

 따라서 당시 백 장군이 섰던 전선을 따라가다 보면 6·25전쟁의 큰 흐름을 그대로 살필 수 있다. 그가 수행한 전투와 경력은 다부동 전투, 북진과 평양 입성, 중공군과의 조우전, 서부전선의 1·4 후퇴, 동해안 휴전선 북상, 휴전회담 첫 한국대표, 지리산 빨치산 대 토벌작전, 한국군 포병 양성, 국군 전력증강, 한미 상호방위조약 교섭 과정 개입, 금성돌출부 방어작전 등이다. 전쟁의 흐름이 그대로 담겨 있는 족적이다.

 ◆지략의 리더십=1권의 첫 장면은 중공군과의 첫 교전이다. 6·25전쟁이 단순히 김일성 군대를 맞아 싸운 동족상잔의 비극을 넘어 국제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개전 초반부터 낙동강 혈전, 평양 탈환까지를 담았다.

 2권은 강릉의 1군단장으로 옮긴 백 장군이 전선을 북상시키는 과정, 중공군을 맞아 대패를 기록한 3군단의 뒤를 받쳐 방어에 성공한 강원도 현리 전투 등을 다뤘다. 대한민국의 후방을 교란하던 지리산 일대의 빨치산을 토벌한 대규모 작전 등도 주요 흐름을 이룬다. 빨치산 고아들을 먹이고 재우기 위해 만든 ‘백선 육아원’의 얘기가 이채롭다.

 3권은 앞의 두 권에 비해 내용이 조금 다르다. 전선 지휘관으로서의 면모를 일부 다룬 뒤 육군참모총장에 부임하는 백 장군의 이야기가 축을 이룬다. 전선 지휘관으로서가 아니라, 정무(政務)를 다루는 ‘군인 백선엽’의 담백하면서도 지혜로운 면모가 치밀하게 드러난다. 미국이 한국군 지휘관 백선엽에 거는 신뢰와 기대가 어느 정도였는지가 잘 담겨 있다. 이승만 정부의 군사 참모 자격으로 미국과의 상호방위조약 체결에 간여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백선엽 장군이 단순한 야전 지휘관이 아니라 지략(智略)과 담략(膽略)에도 뛰어난 장군이었음을 살필 수 있다. 2011년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역경과 극복의 역사를 축약해 읽을 수 있다.

유광종 선임기자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한국전쟁기념재단 이사장
[前] 한국후지쯔 고문
[前] 교통부 장관(제19대)

19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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