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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장관, 실패하는 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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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경호
경제부문 차장

1993년부터 98년까지 김영삼 대통령과 5년 임기를 같이한 장수 장관이었던 오인환 당시 공보처 장관, 그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어느 날 청와대에 들어갔더니 대통령이 불쾌한 표정으로 호통을 쳤다. 정보기관에서 ‘오 장관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데다 대통령도 비판했다’고 보고했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 그러나 그는 정공법을 택했다.

 “각하, 제 나이에 술을 많이 마시는 게 건강에 얼마나 나쁜데 왜 매일 그렇게 마시겠습니까? 각하를 위하고 나라를 위해서 아닙니까? 언론인들하고 좋은 얘기만 하면 그 사람들이 듣습니까? 나쁜 얘기도 하고 비판도 하고 말다툼도 하고 그러면서 헤어질 때 ‘그렇지만 잘 좀 도와주십시오’, 이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권위주의 폐습이 남아 있던 시절 얘기지만, 오 장관은 이 사건을 계기로 나름의 성실성을 다시 인정받았고 매일 저녁의 ‘업무상 음주’도 묵인받았다고 한다. (『장관 리더십』).

 장수 장관이 되려면 이처럼 위기관리에도 능해야 한다. 물론 장수 장관이라고 반드시 성공한 장관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1년 이상 장관을 하지 않고는 장관의 성패 자체를 따지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오 전 장관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우리나라 공무원들로부터 장관이 ‘현혹되지 않는 길’은 장관을 오래 하는 수밖에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지난주 본지가 보도한 ‘나는 장관이다’ 시리즈는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장관 직무가이드』를 비교·분석했다. 노무현 정부에 비해 현 정부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역할을 강조하는 게 눈에 띄었다. 청와대 중심으로 국정이 운용되고 장관의 입지도 예전만 못하다는 분석이 나올 만했다. 장관이 ‘대통령과 더불어’ 국정을 운용한다거나 장관은 대통령과 ‘한 배’를 탄 것이라는 노 정부 때 장관 매뉴얼의 언급은 사라졌다. 이래서일까. 대통령의 권한을 충분히 위임받아 뚝심 있게 행동하는 책임장관이 잘 안 보인다. 그러니 첨예하게 이해가 맞부닥치는 갈등 관리는 모조리 청와대의 몫이 됐다.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의 ‘만기친람(萬機親覽)형’ 업무 스타일과 관련이 있을 게다.

 성공하는 장관은 무엇보다 조직 내부에서 평가가 좋아야 한다. 승진 잘 시켜주고, 산하 기관에 ‘낙하산 자리’를 잘 마련해줘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직원들이 사명감을 갖고 신나게 일할 수 있도록 그들 가슴 언저리에서 보일락말락 하는 ‘공무원의 영혼’을 불러낼 수 있어야 한다. 국정 전반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 장관은 특정 부처의 장이면서 동시에 국무회의의 일원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약사만 쳐다보고,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농민만 떠받들면 당장 이해집단의 칭송을 들을지는 모르지만 결코 국민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장관 매뉴얼은 경고한다. “장관이 국무위원으로서의 위치를 잊고 부처의 이익을 대변하는 장관의 역할에만 집중하다 보면 ‘칸막이의 포로’가 될 위험성이 있다.”

서경호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