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유니폼, 세계 두 번쨉니데이~” 더 높이 나는 부산갈매기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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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늘은 꼭 경기를 해야 되는 날인데 ….”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주장 홍성흔(35) 선수가 탄식했다. 새벽부터 비가 내리던 지난달 26일 롯데 홈구장인 부산 사직야구장.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를 기다리며 몸을 풀던 중 오후 3시 경기 취소 결정이 난 것이다. 전날 연장 12회까지 4시간 넘게 뛰었으니 쉬고 싶을 법도 한데 그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럴 이유가 있었다. 이날이 바로 두 번째 맞는 ‘유니세프데이’였던 것이다.

지난 4월 28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첫 ‘유니세프데이’에서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은 unicef 로고가 큼지막하게 적힌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펼쳤다. 왼쪽부터 황성용·조성환·홍성흔·이대호·김문호·이인구·정훈 선수. [사진=롯데 자이언츠 제공]

유니세프데이는 올해부터 세계 아동구호기관인 유니세프(UNICEF)의 공식 후원 구단이 된 롯데가 지난 4월부터 시작했다. 홈 경기가 있는 매월 넷째 주 목요일을 그날로 잡았다. ‘unicef’ 로고가 가슴 한복판에 커다랗게 적힌 유니폼을 입고 뛰고, 관중석 1000석을 유니세프에 기부해 부산지역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초청한다. 또 시즌 동안 선수들이 홈런을 날리거나 홈경기에서 이길 때마다 포인트가 적립돼 세계의 굶주리는 아동들을 돕는다. 유니세프 티셔츠를 만들어 팔아 수익을 기부하기도 한다. 구장 곳곳에 유니세프 로고를 붙이고, 경기 시작 전 전광판에 홍보영상도 내보낸다. 동영상 모델은 홍성흔과 조성환(35) 선수다.

이를 알게된 팬들도 덩달아 유니세프 후원자가 되고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20년 골수 롯데팬”이라는 한동균(27·사하구)씨는 “인터넷으로 홍보동영상을 우연히 보고 유니세프 후원문자를 보냈다”며 “팬인 내가 모른 척 해서야 되겠냐”고 말했다. 올해 유니세프 정기후원자가 된 사람들 중 30%가 후원 결심 이유로 롯데 자이언츠를 꼽을 만큼 롯데의 유니세프 홍보는 제법 파괴력이 크다.

유엔 산하인 유니세프의 공식 후원 구단은 세계에 4곳이다. 축구의 FC바르셀로나(스페인)·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글래스고 레인저스(스코틀랜드), 그리고 야구로서는 유일하게 한국의 롯데다. 아시아에선 처음이다.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추진하다가 까다로운 조건에 걸려 무산됐었다. 특히 시즌 내내 유니세프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할 수 있는 구단은 리오넬 메시(24)가 뛰는 FC바르셀로나와 롯데 둘뿐이다. 그런 만큼 선수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4월 28일 첫 유니세프데이 경기에서 LG 트윈스에 8대7로 진 뒤 조성환 선수는 이렇게 말했다. “제 타구 두 개가 홈런이 됐다면 아이들 후원금액도 늘어나고 경기도 이겼을 텐데 아쉽네요.” 그날 조 선수는 펜스를 맞는 2루타 2개를 날렸었다. 그는 “유니세프가 후원하는 아프리카의 아동들에게 이 영광을 돌린다”는 수훈선수 인터뷰도 준비했었다고 한다. 주장인 홍 선수는 말한다. “1000경기를 진다 해도 이 유니폼은 계속 입을 겁니다. 우리는 그 만큼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해요.”

롯데가 유니세프 후원 구단으로 선정된 데는 2008년부터 본격화된 사회공헌 노력과 팬들의 열정이 뒷받침됐다. 배재후(51) 단장은 “그해 사직구장 팬이 137만명이 됐을 때 ‘팬들을 위해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회공헌팀을 가동하기 시작했지요”라고 설명했다. 사회공헌팀을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에 보내 그들의 사회공헌활동을 벤치마킹도 했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 민준호 과장은 “그러한 구단의 노력에 더해 결정적으로 유니세프 본부(스위스 제네바)를 감동시킨 건 부산시민의 응원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었다”고 말했다. 구단과 선수, 팬들의 열정이 유니세프를 움직였고, 그 결과는 더 큰 프라이드로 돌아온 것이다. 지역 기업인 부산은행은 구단과 선수들의 승리·홈런 기부금을 대신 유니세프에 내주기로 했고, 롯데손해보험은 지역사회에 기부금을 내놓기로 했다.

◆다른 구단에 ‘자극제’=이런 분위기는 다른 구단들에게도 자극이 될 것 같다. 한 구단 간부는 “구단끼리의 보이지 않는 사회공헌 경쟁도 치열하다. 우리도 더 정성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은 소년·소녀가장 어린이와 1대1 결연을 하고 연봉에 따라 매달 10만~20만원씩을 돕고 있다. 두산 베어스는 선수들의 소장품 경매로 유소년 야구 발전기금을 모은다. SK 와이번스는 2009년부터 ‘사랑의 홈런존’ ‘김광현 삼진’ 등의 이벤트로 모은 기금으로 지금까지 심장병 어린이 21명의 수술을 해줬다. 그 중 고영재(10)군이 지난 4일 홈경기에서 1회 장내 아나운서를 맡기도 했다.

부산=박성민 행복동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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