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지방판 전관예우도 뿌리 뽑아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전관예우(前官禮遇)라는 고질적 관행은 법조계나 중앙 고위 관료사회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와 그 산하기관에도 형태를 달리하는 전관예우가 만연하다. 어제 드러난 서울시 출연 연구기관인 시정개발연구원의 초빙선임연구위원 운영 실태는 ‘지방판 전관예우’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퇴직한 서울시 고위 간부들을 연구위원으로 앉혀 놓고 단 한 건의 연구성과가 없는데도 수천만원의 연구비를 제공한 것이다. 공무원들의 제 식구 챙기기에 서울 시민의 세금이 허투루 낭비된 꼴이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런 행태가 별다른 죄의식 없이 오랜 관행으로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2000~2010년 사이에만 서울시 퇴직 간부 13명이 초빙선임연구위원 계약을 맺었다. 1년 계약 기간에 계약금액이 4531만원인 경우도 있고, 10개월간 5500만원의 연구비를 받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하나같이 연구성과는 전무했다. 사기업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에 대한 시정개발연구원장 해명이 가관이다. “오랜 시정경험을 쌓은 간부 출신 연구위원들이 자문을 통해 시정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도 연구행위 못잖게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몰염치의 극치다.

 서울시 입장에선 고위직 인사 적체를 해소하거나 인사상 배려를 해주지 못한 명퇴 간부를 위한 ‘위로성 채용’ 차원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항변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서울시는 회원들 뒤나 봐주는 친목단체가 아니다. 엄연히 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지방정부다. 그런데도 퇴직한 간부를 사실상 재고용해 아무 하는 일 없이 연봉 5000만원에 가까운 돈을 쥐여주는 건 세금 낭비이자 시민을 무시하는 직무유기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3일 “전관예우는 기득권을 가진 사람이 다시 이득을 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정개발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채용된 서울시 퇴직 간부들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명백한 전관예우란 얘기다. 이 대통령은 “공정사회 기준에 가장 배치되는 게 전관예우”라고도 했다. 서울시가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 더군다나 이 대통령은 전직 서울시장이 아닌가. 퇴직 간부용 초빙연구위원제 같은 전관예우 관행은 당장 없어져야 마땅하다.

 서울시 시정개발연구원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지자체의 전관예우 관행은 뿌리가 깊다. 지방공기업 낙하산 인사가 대표적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127개 지방공기업 가운데 95곳의 사장이나 이사장이 지방공무원 또는 정치인 출신이다. 지하철공사와 도시개발공사 등 지방공사는 절반이 지방공무원 출신이다. 전문 경영 능력이 부족한 인사가 자릴 맡을 경우 경영 부실과 혈세 낭비로 이어지는 건 불문가지다. 퇴직 지방공무원 친목모임인 행정동우회에 지방정부가 매년 수천만~수억원씩 지원하는 것도 세금을 낭비하는 전관예우란 점에서 없어져야 옳다. 법조계와 중앙 관료사회의 전관예우 근절과 함께 지방판 전관예우 관행도 뿌리 뽑지 않고서는 공정사회는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