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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 이수근, 남 웃길 때 가장 행복한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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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이수근은 개그맨이다. 직업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를테면 ‘나는 가수다’처럼 그는 천상 개그맨이다. 남 웃기는 게 가장 재미있고, 남보다 가장 잘하고 싶은. ‘개그 콘서트’에서 코너 ‘고음불가’를 처음 선보인 날을 그는 또렷이 기억한다.

“아, 사람이 저렇게도 웃을 수 있구나 싶을 정도였어요. 거의 배를 잡고 쓰러지더라고요. 그때 진짜 희열을 느꼈어요. 누가 크게 웃어줄 때 제일 희열을 느껴요. 행사 가면 몇천 명이 와르르 웃잖아요. 그 기분은 겪어본 사람만 알죠.”

개그맨이되 ‘뼈그맨’(뼛속까지 개그맨이라는 뜻의 은어)은 아닌 듯하다. 별나라에서 온 4차원이라기보다 굉장히 웃기는 친구 같은 느낌이다. 스스로도 ‘뼈그맨’이라는 말에 크게 감흥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건 일종의 퍼포먼스죠. 저는 정통 코미디를 이어가는 쪽에 더 손을 들어주고 싶어요. 코미디를 통해 노력하는 김병만·김준호 같은 이들이 진짜 개그맨이라고 생각해요.”

코미디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개그맨 선후배들을 염려할 때 가장 두드러진다. “코미디언 위상이 너무 낮아요. 하다못해 유행어 저작권도 인정받지 못하죠. 몇 달간 힘들여서 띄워놓으면 광고에선 다른 사람 성대모사로 써먹어버려요. 그럴 때 정말 기운이 빠지죠. 열정을 인정받지 못한 기분.”

그러니 개그맨 이수근을 만나자. ‘나는 개그맨이다’를 채우는 무수한 열정과 노력, 치열한 경쟁의 장을 엿보자. 당신의 일요일 휴식을 위해 주7일 내내 ‘웃기는 녀석’을 자처하는 이 땅의 개그맨을 만나보자.

글=강혜란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수근을 만난 것은 지난 1일 오후 KBS 출연자 대기실에서였다. 매주 수요일에 있는 ‘개그 콘서트’ 녹화를 준비 중이었다. 인터뷰 중 문이 열리더니 김병만이 불쑥 들어왔다. “일단 한 대 맞고 보자”며 이수근에게 장난을 걸었다. 둘은 연예계의 소문난 ‘절친’이다.

최근 이수근이 백상예술대상 TV 예능상을 탄 것을 화제로 꺼내자 김병만이 코웃음을 쳤다. “그거 내가 먼저(2009년) 탄 거잖아요. 쟤는 만날 날 따라 해. KBS 최우수상도 내가 타니까 따라 타고.”

이수근과 김병만은 같은 1975년생이다. 코미디언의 꿈을 안고 상경해 이곳 저곳 허드렛일을 하며 오디션 보러 다닌 경험도 같다. 차이가 있다면 김병만이 ‘몸 개그’에 충실한 쪽이라면, 이수근은 96년 강변가요제 본선에 진출했을 정도로 버라이어티적인 감각이 앞선다는 점이다. 특히 ‘해피선데이-1박2일’은 이수근을 재발견하게 한 대표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1박2일’ 여배우 특집 땐 최고 인기남으로 꼽혔던데.

“이승기는 빼고였죠. 하하. 아무래도 제가 유쾌하고 편안하다는 이미지가 있어서인 듯해요. 사실 호동이형은 카리스마 때문에 좀 부담스럽잖아요. 지원이는 초딩 이미지가 있고, 엄태웅은 같은 배우라서 그렇고. 제가 운전도 하고 일도 좀 하게 생겼잖아요.”

-초창기엔 눈치도 많이 먹었는데, 요즘은 2인자로 굳혔죠.

“공개 코미디 하다 리얼 버라이어티로 넘어오면서 처음엔 어려웠어요. 만날 듣는 소리가 “카메라 꺼지면 제일 웃기면서” 이런 거고. 버라이어티는 팀워크가 중요하고 대인관계와 친분이 많이 작용하는 것 같아요. 이젠 여유를 갖게 됐죠. 우리끼리는 ‘전원일기’ 찍는 것 같다고 말해요. 눈빛만 봐도 다 아는 사이고. 벌써 5년째니까요.”

-단신에 푸근한 시골 이미지라 ‘전국노래자랑’의 송해 선생님 후임으로 딱이다 싶어요.

“아유, 그런 말은 영광이지만 감히 꿈도 못 꿔요. 글쎄, 기회가 된다면, 생각하다가도 거기까지예요. 송해 선생님이 30년간 쌓아온 게 있는데, 부담감이 더 크죠. 맡으면 약이 될지, 독이 될지. 언젠가는 내 이름을 걸고 프로그램 하는 게 꿈이에요. 믿음을 드리려면 실력을 쌓아야 하고 기회를 봐야죠.”

‘개콘’에선 매주 ‘나가수’ 열린다

그는 최근까지 지상파 3사에서 6개 프로그램 MC를 맡았다. 개편과 함께 ‘7일간의 기적’과 ‘명 받았습니다’가 막을 내리면서 그나마 한숨을 돌렸다. 그래도 ‘승승장구’ ‘달고나’ ‘1박2일’ ‘개그 콘서트’를 종횡무진 중이다. 방송가에선 ‘포스트 유재석·강호동’의 대표주자로 그를 꼽는 이가 적지 않다.

-본인도 이젠 MC 욕심이 더 크지요.

“MC든 개그맨이든 그런 건 안 가리고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존재이고 싶어요. 재석·호동 형님과는 비교도 안 되죠, 아직은. MC 잘하려면 책도 많이 읽어야겠고, 나만의 스타일을 개발해야겠죠. 기존의 선배들 따라 해선 안 되고 나만의 색깔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개그 콘서트에서 ‘봉숭아학당’ 선생님만 내리 하는 이유가?

“콩트 하나 짜는 데 5일을 투자해야 하는데 지금 제가 경쟁할 처지가 못 돼요. 후배들 자리 뺏는 것 같아 삼가는 것도 있고요. ‘개콘’ 무대는 퀄리티가 매우 높아요. 60~70명이 매주 오디션을 하고 치열한 경쟁 끝에 방송을 타죠. ‘나는 가수다’ 얘기하는데, ‘개콘’은 그렇게 따지면 매주 탈락자가 생겨요. 저도 경쟁에서 열심히 해서 여기 와 있는 거고요.”

-늘 활기찬 분위기라 스트레스가 없어 보여요.

“혼자 삭이는 편이거든요. 한번 앓으면 원형탈모가 생길 정도예요. 내색은 안 해요. 우리끼린 개그맨이 ‘고급 거지’라고 표현해요. 생활고가 있어도 어떻게든 웃겨야 하니까요. 예컨대 병만이가 지금 이룬 거요, 저는 판·검사 되는 것보다 힘들다고 생각해요. 순전히 노력과 열정으로 이룬 건데, 코미디가 폄하되는 게 안타까워요.”



모든 어머니의 이름으로

지난달 이수근에겐 또 다른 경사가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2011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에 그의 모친 김산옥(63)씨가 대중예술 부문에서 선정된 것이다. 개그맨 어머니의 수상은 2009년 이봉원에 이어 이수근이 두 번째다. 심사평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구김살 없이 자라 성실한 대중예술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수근을 훌륭하게 키운 공로”를 치하하고 있다.

-어머니에게 큰 효도 하셨네요.

“평생 외롭게 사신 분이라 생각하면 미안하죠. 심사위원회가 감동적인 에피소드 같은 거 물어보는데, 사실 딱히 없었어요. 그냥 저를 자랑스러워 하시는 어머니라는 존재 자체가 감사한 거죠. 개인적으론 개그맨이 대중예술인으로 인정받은 그 자체가 자랑스러워요. 힘들게 사신 어머니 슬하에서 웃음을 택한 나처럼, 개그맨들 어머님들이 다들 대단하시거든요. 제 어머니가 대표로 받으신 거라 생각해요.”

-어렸을 때부터 개그맨을 꿈꿨나요.

“저는 진짜, 꿈이 하나, 개그맨이었어요. 남들보다 잘 웃길 수 있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성공은 행복이에요. 지금 이렇게 남 웃기는 일 하고 있으니 그런 점에서 행복하고 성공한 셈이죠. 후배들한테 그러죠. 나중에 축구장 같은 거 크게 지어서 우리 거기서 재미난 쇼를 하자고. 어, 지금 웃으시네요. 제 말 안 믿겨요? 두고 보세요. 언젠가 기자님과 거기서 다시 인터뷰하게 될 테니까요.”

시시콜콜 >> 이수근은 스펀지

강호동·신동엽·이경규 등 톱MC 보조 두루 거치며 강점만 흡수

‘요즘 대세’ 이수근이 스스로 꼽는 몇 차례 점프 계기가 있다. 첫 번째가 ‘개그콘서트’의 ‘고음불가’. 다음이 단신(單身) 신세를 풍자한 ‘키 컸으면’이다. 이후 ‘해피투게더-프렌즈’에서 보조 진행을 하다가 ‘해피선데이’의 신규 코너 ‘준비됐어요’에 도전했다. 시청률 4~5%로 고전했지만, 그걸 계기로 ‘1박2일’에 합류했으니 인생사 새옹지마다.

예능 MC는 누구에게서 배웠느냐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고들 한다. 이수근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이는 강호동이다.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힘이 있다. 대상이 누구라도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주변을 건강하게 만드는 리더십과 에너지를 지녔다. 아직도 매일 배운다”고 치켜세웠다.

강호동뿐 아니라 당대 톱MC들의 보조를 모두 거친 게 이수근의 자산이다. 스스로도 “행운”이라고 표현한다. 신동엽에 대해선 재치·위트를 강점으로 꼽았다. “눈빛에 장난기가 가득하다”는 것이다. 이휘재는 깔끔하다고 요약했다. “깔끔한 외모에서 오는 신사 이미지가 있다. 진행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간다”고 했다.

‘버럭 경규’로 알려진 이경규에 대해선 “배려하는 편”이라며 옹호했다. “오랜 시간 해온 분이라 여유가 있다. 누구보다 프로그램 회의에 열정적이기도 하다. 만들어진 것을 하는 게 아니라 참여해서 만들어가는 MC다.” 마지막으로 유재석에 대해선 “여러분이 보는 그대로다. 더 붙일 말이 없다. 닮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얼마 전 ‘1박2일’을 찍고 오는데 호동이형이 제게 “지치지 말자”고 문자를 보냈어요. 그날따라 제가 리액션이 떨어지는 게 보였나 봐요. 형의 그 문자가 큰 힘이 됐어요. 그 순간만큼은 즐기자고 다시 다짐했고요.”

언젠가 이수근이 톱MC가 된다면 그의 저력은 ‘스펀지’가 될 것이다. 남의 강점을 흡수하며 그렇게 이수근이 자란다.

이수근

생년월일: 1975년 2월 10일
신 체: 168㎝, 65㎏
출신학교: 서일대 레크레이션과
데 뷔: 1996년 MBC 강변가요제 본선

경력

-KBS 개그콘서트 ‘봉숭아학당’ ‘고음불가’ ‘키컸으면’ ‘야야야브라더스’등
-KBS ‘해피투게더’, KBS ‘비타민’, SBS ‘스타킹’등 고정패널
-KBS ‘해피선데이-1박2일’ MC
-KBS ‘상상더하기’ MC
-MBC 드라마넷 ‘식신원정대’ MC
-KBS 승승장구 MC
-KBS 명받았습니다 MC
-SBS 달고나 MC

수상

-2007년 KBS 연예대상 남자부문 베스트엔터테이너상
-2008년 KBS 연예대상 쇼오락MC부문 남자신인상
-2008년 제15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 남자희극인부문상
-2011년 제47회 백상예술대상 TV부분 남자예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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