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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호국용사를 예찬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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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

지난 6월 6일은 56회 현충일이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뜻을 기리는 날인데도 수많은 초등학생은 그날의 의미를 모르고 있었다. 슬픈 날이긴 하나 노는 날, 심지어는 ‘이순신 장군 기념일’로 알고 있을 정도다. 이것은 철없는 초등학생들의 경우라고 하겠지만, 어른들이라고 해서 다를까. 사이렌이 울려 퍼졌을 때 하던 일을 멈추고 묵념을 하는가. 혹시 국수주의 잔재라고 비아냥거리지 않으면 다행이다.

 하기야 정치인들은 현충일에 현충원을 찾아 참배한다. 현충일뿐만 아니라 무슨 큰 뜻이나 결연한 의지를 밝힐 때도 현충원을 찾는다. 호국영령에게 자신의 뜻을 엄숙하게 고한다는 의미이리라. 그러면 방송은 이들의 모습을 보도하기에 분주하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인들이 현충원에서 분향하며 그 향내만큼의 숙연함을 품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정치적 의례나 쇼맨십에 불과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우리 사회에는 호국의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현충원이나 그들을 추념하는 현충일에 대한 심각한 오해가 있다. 현충일을 기념하고 현충원을 참배하는 것은 호국영령들의 명예를 기리고 드높이기 위함이라는 인식과 믿음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과 같은 잘못된 믿음이다. 우리가 호국영령들을 기림으로써 그들의 명예와 공적이 새삼 빛을 발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희생과 헌신을 통해 불멸하는 민족혼이 되었고, 조국의 산하를 지키는 국가의 수호자가 되었다. 그러니 그들을 예찬한다고 하여 그들의 공적에서 더 더할 것도 없고, 예찬하지 않는다고 하여 더 뺄 것도 없다. 우리가 정성스럽게 추념하든 그렇지 않든 그들의 희생과 헌신은 이미 불멸의 것이 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호국영령들을 기린다’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그들을 기림으로써 그들이 아닌 우리의 명예가 드높아지고 품격이 고귀해지며 우리가 더욱더 거룩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 본래의 참뜻이다. 우리는 흔히 귀한 자리에 초대받았을 때 황홀함을 느낀다. 대통령이나 은사와 같은 귀한 분이 초대했을 때 초대에 응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귀한 분이 초대하는 자리에 갔다 왔다고 얼마나 자랑하고 감격하는가. 귀한 자리에 동참함으로써 고양되는 것은 귀한 분의 공적이나 명예가 아니라 참여한 사람의 품위와 명예일 터이다.

 현충일이야말로 호국영령들이 우리를 자유의 땅이 된 대한민국이라는 성지에 초대하는 날이며, 우리를 초대하는 땅뙈기가 현충원이다. 그런 성스러운 자리에 초대하는 것이 호국영령이고 초대받는 것이 우리라면, 참여함으로써 축복을 받는 존재가 누구인지는 불을 보듯 명백하다. 당연히 우리는 호국영령들을 기억함으로써 그들의 명예를 드높인다는 오만함을 버리고, 자유의 성지에 초대함으로써 자유인으로서 우리의 자존감을 드높여준 그들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해야 한다.

 현충원에 가면 무명용사의 탑이 있다. 무명용사의 탑이야말로 가히 현충원의 백미(白眉)다. 그 안에는 누구의 유골함도 없다. 텅 비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슴 뭉클하게 하는 감동을 자아내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가. 무명용사, 그들이 누구인가. 새벽녘 이슬처럼 잠깐 풀잎에 내렸다가 해가 뜰 무렵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 용사들이 그들이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데,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어간 무명용사이기에 그들은 ‘롤 콜(roll-call)’이나 호명의 대상도 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이름 모를 꽃, 이름 모를 풀벌레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은 웬일인가. 이름 모를 꽃들이 있기에 봄의 들판은 더없이 아름답게 수놓아져 있다. 또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가 있기에 여름의 밤은 더없이 화려하지 아니한가. 마찬가지로 이름 모를 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우리 공동체는 더없이 아름답고 화려한 자유와 번영의 공동체가 되었다. 무명용사들은 죽어가면서 이름은 남기지 못했지만 ‘최후의 언어’는 남겼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면 그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뿌리 없는 나무가 어떻게 열매를 맺을 수 있고 꽃을 피울 수 있겠는가. 호국영령들이야말로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의 뿌리고, 그로부터 태어난 줄기요 열매가 대한민국의 뿌듯한 현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들이 결연한 마음으로 시작한 미완의 일들을 이어받아 꽃을 피우고 완성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것이 호국용사 예찬론의 핵심일 터이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