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세상을 말하다]大義滅親 대의멸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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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 위나라 장공(衛庄公·BC 757~BC 737)은 세 아들을 뒀다. 그중 막내아들 주우(州<5401>)를 유독 사랑했다. 너무 귀여워한 나머지 버릇 없이 키웠다. 재상 석작(石<788F>)이 위장공에게 아들을 엄격히 다루라고 간언했지만 허사였다. 주우는 오히려 석작의 아들 석후(石厚)를 꾀어내 함께 방탕한 생활을 했다.
위장공이 죽고 장남 희완(嬉完)이 즉위하니 그가 위환공(衛桓公)이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주우는 형의 왕위 세습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석후와 함께 형을 죽인 뒤 왕위에 올랐다.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갔다. 주우는 민심 수습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간 옛 충신 석작을 불러 등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석작은 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웃 진(陳)나라의 도움을 받아 주우와 자신의 아들 석후를 체포했다. 그는 죄인의 목을 베라고 명했다. 명을 받은 장수가 ‘석후는 어찌하오리까?’라고 묻자 석작이 준엄하게 답했다. ‘석후는 내 아들이지만 모반을 뒤에서 부추긴 놈이다. 어찌 사적 감정으로 대의(大義)를 버릴 수 있겠느냐’. 춘추시대 역사서 '좌전(左傳)'이 전하는 ‘대의멸친(大義滅親)’의 고사(故事)다.

대의멸친은 말 그대로 ‘대의(大義)를 위해 친족(親族)도 멸(滅)한다’라는 뜻이다. 의(義)의 막중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성어다.글자 ‘義’는 양(羊)과 무(武)가 합쳐 만들어졌다. 양은 희생(犧牲·동물의 피를 신령에게 바침)의 제물로 쓰인 동물. 무사(武士)가 제단에서 칼로 양을 잡는 모습이 바로 ‘義’다. 그러기에 중국 어문학자들은 “글자 ‘의’에는 본디 피가 섞여 있다”고 말한다.

맹자(孟子)는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도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수오지심)’을 ‘의’라고 했다. 타인의 잘못에도 분개하고, 기꺼이 칼을 뽑을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또 ‘내 목숨과 의가 함께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목숨을 버리고 의를 선택해야 한다’고도 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축은행 비리로 썩은내가 진동하고 있다. ‘대의멸친’의 정신으로 부패의 근원을 멸해야 할 터다. 대의를 구현하는 길에는 피(血)가 뿌려지게 마련이다. 칼을 뽑아야 할 때다.

한우덕 기자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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