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저금리는 한국경제의 큰 위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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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호 24면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 ‘최고경영자(CEO) 대통령’을 자처했다. 그는 현대그룹 주요 계열사의 CEO를 지낸 경력을 갖고 있다. 2008년 2월 한국의 유권자들이 그에게 대통령 자리를 맡긴 것은 경제적 어려움을 풀기 위한 개혁을 원했기 때문이다. 여기엔 불도저 같은 추진력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시장 고수에게 듣는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이명박 정부가 일관되지 않고 변덕스럽게 정책을 운영하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 이 정부가 최대 강점으로 내세웠던 경제 분야에서 핵심 이슈는 ▶경제 안정에 힘쓰고 ▶금융개혁을 실천하는 두 가지다. 만일 이 대통령이 진지하게 대응하지 않는다면 투자자들은 부정적인 평결을 내릴 것이다. 이것은 한국 금융시장에 좋을 리가 없다.

첫째 이슈부터 살펴보자. 현재의 경기 과열은 한국 경제에 즉각적인 위협이다. 표면적으로 이 문제는 대통령보다 한국은행 총재에게 더 큰 고민이긴 하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한은이 기준금리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커다란 압력을 받고 있다고 믿는다. 한은이 금리를 올리면 원화가치도 따라서 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삼성전자·현대자동차 같은 주요 수출기업의 채산성이 나빠진다.

올해 한국의 물가상승률은 한은의 기준금리인 연 3%를 크게 웃돌 전망이다. 3월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7%나 됐다. 과거에도 자주 그랬듯이 낮은 금리는 자산가격의 거품을 일으킨다. 이것은 한국 경제가 당면한 위험이지만 이 정부가 과도한 쏠림에 대해 충분히 경종을 울리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정부와 한은의 관계는 좋게 봐주더라도 어설프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중앙은행에 압력을 행사할수록 거품 붕괴로 인한 경기침체의 불확실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둘째, 금융개혁도 경제 안정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다. 최근 외환은행의 처리 과정만큼 투자자들을 실망시킨 사례는 없다. 2003년 미국의 사모투자펀드(PEF)인 론스타는 아시아 외환위기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던 외환은행 지분 51%를 인수했다. 당시 정책 당국자들에게 론스타는 망가진 회사에 돈을 넣어주는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거리의 분위기는 달랐다. 단기 차익을 노리는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이 강했다. 서울에서 PEF는 ‘기업 사냥꾼’과 같은 뜻으로 통했다.

지난 5년 동안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노력은 정책 당국자들에 의해 번번이 좌절됐다. 애초에 외환은행을 인수한 것이 합법적이었는지 논란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해외 투자자들의 반감을 누그러뜨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이 정부의 실책이다. 지난달 금융 당국은 또다시 외환은행 매각 계약의 승인을 보류했다. 이상한 점은 이번 거래로 외환은행이 외국인에게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외국인 소유였던 은행이 한국의 하나금융그룹에 넘어오는 것이었다.

이런 싸움이 길어질수록 투자자들에게 한국의 이미지는 나빠질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CEO는 아시아에서 네 번째로 큰 경제대국인 한국이 진정으로 비즈니스에 열린 나라인지 입증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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