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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용어처럼 느껴진 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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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기택
시인

“캐비닛은 내 서류들을 잠그어 놓고/ 내 자유마저 몰수해 갔다/ 나는 어떤 의자 위에만/ 여러 해 동안 앉아 있었다 (…) 지난 평생 동안/ 남들의 손아귀에 잡혀/ 소금에 절인 생선처럼 몸을 뒤집을 수가 없었다”.

 5월 중순에 중국 시안(西安)에서 열린 한·중작가회의에서 나는 중국의 두아이민(杜愛民) 시인의 시 ‘자신을 향해 머리 숙이기’를 한국어 번역으로 낭독했다. 일과 생활에 얽매여 사는 자신을 캐비닛에 잠긴 서류에 비유하면서 그 구속을 견디는 자신에게 머리를 숙인다는 고백을 한 시다.

 이어서 두아이민 시인이 나의 시 ‘사무원’을 중국어 번역으로 낭독했다. “그는 자기 책상 자기 의자에만 앉아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가 서 있는 모습을 여간해서는 볼 수 없었다고 한다 (…) 그가 화장실 가는 걸 처음 목격했다는 사람에 의하면/ 놀랍게도 그의 다리는 의자가 직립한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라는 대목에서 두 시가 다르면서도 공통점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아이민 시인은 현재 항공회사에 다니면서 시를 쓰고 있다고 하면서 스스로 아마추어 시인이라고 낮추어 말했다. 나도 20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를 썼고 ‘사무원’은 그 경험에서 나왔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왜 서로 다른 작품에서 같은 생각과 정서가 읽혀졌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두아이민 시인과 나는 직장생활을 하느라 시 쓸 시간이 없어서 길에서 시를 쓰는 버릇이 생긴 것까지 닮아 있어서 놀랍고 흥미로웠다.

  황동규 시인이 읽은 수팅(舒婷) 시인의 시와 수팅 시인이 읽은 황동규 시인의 시도 작은 것에서 우주적인 공간을 읽는 상상력과 섬세한 감각이 서로 닮았다. “꽃송이 하나하나가/ 마침 파고든 벌을 힘껏 껴안는/ 이 팽팽함!// 배나무와 벚나무 상공에서/ 새들은 땅 위에서 환한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잠시 천상과 지상을 잊을 것이다.”(황동규, ‘꽃’). 한송이 눈꽃이 방금 전에/ 알프스 체온을 재고 나서/ 내 손바닥 안에서 파닥거린다/ 캄캄한 밤은 영도에서 태생한다”(수팅, ‘눈꽃 읽기’). 이시영 시인과 옌리(嚴力) 시인도 역사 속의 삶을 보는 서정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태도가 조금씩 겹쳐 있었다. 함께 참여한 우리 시인들도 대부분 이런 소통을 느꼈다고 했다.

 국가와 언어도 다르고 역사와 환경도 다른 시인들이 ‘시’를 통해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묘한 기분이었다. 의미는 번역을 통해야 알 수 있었지만 감정과 정서와 감각은 번역이 없어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시에서는 두 나라의 글이 달라도 감각과 정서와 상상력은 같은 언어로 되어 있음을 실감했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외국과 활발하게 문학 교류를 하고 있다. 번역과 통역이 받쳐 주니 소통의 어려움도 크게 줄었다. 시를 쓰고 읽으면 나의 비밀스러운 내면이 남에게 들키고 나도 남의 비밀을 훔쳐보면서 타인과 동질감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경험을 언어가 다른 외국 시인들과 나누는 일은 쉽지 않다. 이번 행사에서 두 나라 시인들이 민족과 문화를 넘어 ‘시’라는 공용어를 체험한 것은 값진 경험이었다.

김기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