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판 ‘3색 신호등’ … 5년간 벌금만 89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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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데일리메일

빨간색 화살표 표시. “가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최근 운전자에게 혼란을 준다는 이유로 3색 신호등이 전면 폐지됐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이보다 더 황당하고 기막힌 교통 시스템이 논란이 되고 있다. 신호등을 없애고 여러 개의 표지판을 어지럽게 설치했다. 그리곤 CCTV를 달아놨다. 표지판을 하나라도 놓치거나 잘못 읽으면 여지없이 CCTV에 촬영돼 벌금을 내야 한다. 5년동안 이렇게 딱지를 떼인 운전자가 낸 벌금만 89억원에 달한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이 표지판들이 런던의 캠덴타운에 있는 시의회의 한 주택가 도로에 있다고 전했다. 이곳에 설치된 교통 안내 표지판만 모두 9개다. 시간대별로 통행 방향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리는 표지판에서부터 응급차만 다닐 수 있는 도로표지판, 자전거 너비까지 철저히 제한하는 표지판까지 각양각색이다.

표지판을 하나라도 놓치거나 잘못 해석한 운전자가 2006년 10월부터 2011년 3월까지 4만1237명이나 된다. 한 달에 800명 꼴이다. 이들은 여지없이 벌금딱지를 받았다.

2006년 10월까지 이곳엔 차량의 진입을 제한하는 볼라드와 함께 신호등이 설치돼 있었다. 볼라드의 위치에 따라 신호등이 통행 가능한지 여부를 운전자에게 알렸다. 그러다 시의회가 신호등을 없애고 9개의 표지판과 CCTV를 설치했다. 이렇게 통행신호체계를 바꾼 별다른 이유도 없었다. 이 때부터 운전자들이 속속 함정에 걸려 벌금 폭탄이 떨어졌다.

이 도로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표지판은 오전·오후에 ‘통행 금지’ 방향이 다르다는 것. 나란히 세워진 4개의 표지판은 차량과 오토바이의 통행 시간대를 다르게 적어놨다. 오전 7시에서 10시에는 순방향, 오후 3시에서 7시에는 역방향으로 지나가게 안내하고 있다.

또 이 도로 초입은 세 갈래로 나뉘는데 가운데 도로는 응급차만 진입이 가능하다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도로를 지날 수 있는 자전거 너비는 7피트로 제한했다. CCTV가 설치돼 있다는 표시판도 2개 있다.

급기야 시민들이 시위대를 꾸려 캠덴타운 시의회에 강하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시 예산을 늘리기 위해 운전자를 ‘캐시카우’로 삼아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며 비난했다.

‘벌금 경고(Penalty Charge Notice)’ 웹사이트 운영자 폴 피어슨씨는 “벌금을 매기는 방법이 터무니없이 황당하다”며 “고속도로의 강도나 하는 짓”이라고 쏘아붙였다. 그는 “이건 분명히 예산이 바닥난 시의회가 돈벌이로 카메라를 설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민 데이비드 하워드(51)씨도 “표지판이 너무 작고 많아서 차를 세워야 읽을 수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순식간에 지나쳐 버리는데 여길 처음 지나가는 사람은 눈 깜짝 할 사이에 딱지를 떼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논란에 대해 캠덴타운 시의회 측이 답변을 내놨다. “표지판들은 운전자들에게 아주 잘 보입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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