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 게 비지떡’ 편견 깬 단돈 1000원의 행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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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호 27면

지난해 말 문을 연 서울 종로의 다이소 600호점. 옛 종로서적 건물 1~4층에 자리 잡았다. 다이소는 올해만 50개 넘는 매장을 새로 오픈했다. 조용철 기자

‘싼 게 비지떡이다’.
다이소아성산업의 박정부(67·사진) 회장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다. ‘1000원의 행복’을 파는 그가 넘어야 할 편견이기도 하다. 일본 100엔숍의 대명사인 다이소와 국내기업 아성산업이 합작한 다이소아성산업은 국내에서 ‘1000원숍’ 시장을 처음 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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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호점을 선보인 다이소는 14년 만에 매장 수가 658개(2011년 5월 기준)로 늘었다. 최근 5년간 매출이 연평균 44.7% 증가하며 지난해 46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평균 판매가 1500원(가격대는 다양하지만 이 중 51%가 1000원이다)을 기준으로 하면 3억600만 개 제품이 팔린 셈이다. 국민 한 사람이 다이소에서 제품 6개 이상을 구매했다는 얘기다. 숫자 너머에도 다이소의 성과는 있다. 소비자에게 1000원의 가치를 알려줬다는 것이다. 유·무형의 성공을 이룬 다이소의 비결은 무엇일까.

다이소에서는 2000원, 3000원짜리 제품도 팔지만 절반은 1000원짜리다. 저렴한 가격, 1000원은 다이소가 지켜야 할 원칙이다. 이를 위해 다이소는 제조업체가 납품가를 제시하면 여기에 유통업체가 이윤을 더해 판매하는 기존의 거래 방식을 뒤집었다. 판매가가 정해진 상황에서 제조사의 납품가를 받아들이는 게 불가능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대신 원하는 가격을 제시하면서 제안을 했다. ‘현금으로 대량구매를 하겠다’ ‘디자인이나 포장에서도 거품을 빼자’는 식으로 제품 원가를 줄이는 방안을 찾아나간 것이다.

가격을 해결하고 나면 남아 있는 중요한 조건은 품질이다. 단가만 고려한다면 ‘메이드 인 차이나’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다이소가 취급하는 수입품 중 중국산은 절반이 채 안 된다. 대신 가격과 품질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 전 세계를 누비는 길을 택했다. 제품 소재·품목에 따라 가격경쟁력 있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따로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대나무 제품은 필리핀, 스테인리스는 인도 식으로 전 세계 28개국 2000여 개 업체에서 납품받고 있다.

세 번째는 다양성이다. 소비자에게 쇼핑하는 재미를 주기 위한 요소다. 박 회장은 “저렴한 가격만큼이나 다른 데 없는 다양한 상품군이 고객들에게 어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이소는 주방용품·일회용품 등 20여 개 카테고리의 2만 종이 넘는 제품을 판매한다. 이 중엔 애견용품·원예용품·파티용품처럼 국내에서 활성화되지 않은 시장을 개척한 경우도 있다. 남보다 먼저 트렌드를 예측한 덕인데, 이는 오랜 시간 일본과 무역업을 해온 박 회장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일본 다이소에 제품을 납품해 온 그는 일본에 유행한 트렌드가 평균 5년 후엔 국내에 들어온다는 걸 알게 됐다. 젊은이들 사이의 파티문화나 주부들 사이의 DIY(Do It Yourself, 가구나 소품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것) 바람도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인기를 끌던 것이다.

일본에서 균일가 매장은 백화점·양판점·편의점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통 채널이다. 우리나라에선 백화점·대형마트·편의점이나 수퍼마켓이 유통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균일가 매장은 제4의 유통채널로 성장하는 과정에 있다. 고객 서비스는 이 자리매김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다.

다이소는 저렴한 물건을 팔지만 소비자들이 깔끔한 대형마트에 온 듯한 느낌을 받도록 매장을 구성했다. 제품을 115개 세부항목으로 분류하고 체계적으로 진열해 고객의 동선에 막힘이 없도록 했다. 또 대체로 작고 아기자기한 제품 특성에 맞춰 매장도 밝고 화사하게 만들었다.

매장 인테리어가 하드웨어라면 직원 서비스는 소프트웨어다. 매장이 문을 연 후 전적으로 관리를 책임지는 건 점장과 직원의 몫. 다이소는 직원 선발 기준부터 달랐다. 판매 제품이 주로 생활용품이라는 점을 고려했다. 가장 익숙하고 경험이 많은 주부야말로 다이소 직원으로 적합하다. 실제 점장의 92%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주인의식과 책임감을 심어주기 위해 점장에겐 매출·재고 관리, 상품 주문, 직원 교육 등 권한을 전적으로 위임했다. 회사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도 부여했다. 임시직으로 들어왔더라도 능력에 따라 정사원, 점장, 여러 개의 매장을 관리하는 파트장으로 승진할 수 있도록 해 강한 동기부여를 했다. 박 회장은 “저가의 제품을 판매할수록 최선의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싼 물건을 산다고 저렴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자칫 고객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

1호점을 낸 지 10년 만인 2007년 다이소는 서울 강남에 진출했다. ‘부자 동네’에서 1000원짜리 수요가 얼마나 있을지 우려도 했지만 지금은 강남역 같은 ‘노른자위’에 2곳의 매장을 갖고 있다. 박 회장은 “초기엔 1000원짜리 팔아서 비싼 임대료 내고 어떻게 버티나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이소의 덩치가 커지고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이런 우려는 사라졌다. 오히려 “소득 수준에 따른 구분 없이 누구나 드나들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중산층과 부유층도 새로운 상품을 발견하는 재미, 합리적으로 소비하는 생활의 지혜를 느끼면서 다이소에서 쇼핑하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이소는 지금까지보다 빠른 속도로, 더 많은 곳으로 확장·투자 중이다. 취급 제품과 유통 수량이 많은 특성상 물류의 효율성이 이익과 직결된다는 점을 감안해 제2의 대형 물류센터를 건설하고 있다. 또 균일가 매장의 선두주자로서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매장 수를 늘리고, 매장의 질도 향상시키고 있다. 다이소 측은 2015년이면 1000호 점 문을 열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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