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요금 인하도 무상복지 식인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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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호 02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맹활약했던 프랑스 총리 클레망소가 어느 날 이런 질문을 받았다. “당신이 알고 있는 가장 나쁜 정치인이 누굽니까”라고. 클레망소는 이렇게 답했다. “글쎄, 그 대답이 쉽지 않아요. 이 녀석이 제일 나쁘다고 생각하면 즉시 더 고약한 작자가 나타나거든.”

김영욱의 경제세상

요즘 딱 이런 심정이다. 노무현 정부 때는 ‘다음 정부는 그러지 않겠지’ 싶었다. 웬걸, 이 정부도 마찬가지다. 경제를 감성적으로 접근하고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포퓰리즘에 젖어 있다. 우회전 깜박이를 켜고 좌회전하는 바람에 실망감은 더 크다. 다음 정부에 대한 기대도 별로 없다. 누가 되든 지금 정부보다 더 못할 것 같아서다.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한나라당의 포퓰리즘적 행태도 극심하다. 원내대표와 정책위 의장은 취임하자마자 선심성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중 하나가 통신요금 인하다. 정부가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넉 달가량 고민한 결과를 들고 한나라당을 찾아갔다. 그러나 정책위 의장은 이걸로는 성에 안 찬다며 통신요금을 더 내리라고 지시했다. 기본요금은 낮추고 가입비는 폐지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국민 모두가 골고루 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통신요금이 비싸다는 지적에는 동감한다. 가격이 높고 낮고를 판단하는 건 매우 어렵다. 어느 장관의 말처럼 원가구조를 들여다 본다고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판단할 근거는 여럿 있다. 그중 하나가 이익률이다. SK텔레콤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16.3%다. 삼성전자(11.1%)나 현대자동차(8.8%)보다 훨씬 높다. 또 통신은 독과점 산업이다. SKT와 KT, LG유플러스 등의 3사 과점 체제고, SKT의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는다. 독과점 가격이 경쟁 가격보다 높다는 건 정설이다. 그만큼 소비자들이 피해를 본다. SK텔레콤의 이익률이 삼성전자보다 높은 이유다. 정치권과 정부 말처럼 요금을 인하할 여지는 분명히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다. 기업의 팔을 비틀어 가격을 내리게 하는 방식이 과연 옳으냐는 점이다. 물론 당장은 효과를 본다. 기업은 시키는 대로 가격을 내린다. 하지만 이는 최하책(最下策)이다. 효과는 일시적이다. 압력이 느슨해지는 순간, 기업은 가격을 원상회복한다. 게다가 기업이 피해나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내리라는 가격만 내리고 다른 제품 가격을 올리면 된다. 내용물은 같되 브랜드만 다른 제품을 출시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독과점 구조를 경쟁시장으로 만드는 거다. 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면 가격은 내려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애초 짜놓은 대책도 그렇다. 신규 사업자를 키우고 재판매사업자제도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 완력 행사를 용인한다고 하자. 선거에 표가 필요하고, 표를 모으는 데는 경제 논리를 무시해야 하는 정치인의 입장을 십분 이해한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모든 국민이 골고루 혜택을 받는’ 방식은 안 된다. 요금을 내린다고 해야 월 1000~2000원이 고작일 것이다. 더 이상 내리면 3위 업체인 LG유플러스가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독과점 구조가 심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의문이다. 100만원가량 하는 고가의 기기를 사서 매달 10만원 이상 통신료를 내는 사람에게 월 1000~2000원 깎아준다고 감동할까. 그게 표에 도움이 될지를 자문해보면 금방 알 일 아닌가. 그래서 제안하고 싶다. 굳이 하겠다면 형편이 정말 어려운 사람에게만 통신요금을 확 깎아주라. 고액의 통신요금을 내는 사람을 도울 이유는 없다. 물론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선별하는 건 쉽지 않을 거다. 그렇다고 국정을 책임진 사람들이 매번 손쉬운 길만 가서야 되겠는가. 고민하다 보면 방법은 나올 거다. 저렴한 기기를 사용하거나 값싼 요금제를 쓰고 있는 사람을 고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런 마음가짐이고, 고민하는 자세다. 통신요금조차 무상복지 식으로 접근하는 자세는 옳지 않다. 힘들더라도 도움이 절실한 사람만 돕는 선택적 복지로 가야 한다. 선심은 썼지만 표도 얻지 못하고, 경제만 망칠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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