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 당한 고교생 ‘제초제 복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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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 24일 경기도 광명시의 한 고등학교에선 사물함에 놓여 있던 음료수를 먹은 학생 한 명이 구토와 마비증세를 보였다. 단순한 식중독으로 볼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경찰 수사 결과 자신을 괴롭히던 같은 반 동료를 혼내주려던 학생이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은 24일 낮 12시50분 광명의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 앞에서 일어났다. 복도에 설치돼 있는 A군(18)의 개인사물함에 누군가 놓고 간 스테인리스 보온병과 초콜릿이 발견됐다. A군은 자기 물건이 아니라며 사물함을 같이 썼던 B군에게 건넸다. B군을 비롯한 같은 반 학생 5명은 이 음료수를 나눠 마셨다가 곧바로 뱉어버렸다. 그러나 같은 반에 있는 다른 학생이 이 음료를 마셨고 곧바로 구토와 손 마비증세를 보였다. 이 학생은 병원에서 3시간에 걸쳐 혈액투석 치료를 받아야 했다. 학교 측은 처음엔 식중독을 의심했다. 그러나 보온병의 주인이 나타나지 않자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성분 분석 결과 이 음료에는 제초제 성분인 ‘디캄바’가 들어 있었다. 이틀 뒤 붙잡힌 범인은 사물함 주인인 A군이었다. A군은 평소 B군이 자기에게 모욕적인 말을 자주 한 것에 앙심을 품고 이런 일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B군을 혼내줄 방법을 궁리하던 A군은 지난 19일 동네의 한 농약판매점에서 제초제를 구입해 매실원액과 섞었다. 인터넷 검색으로 생명에 지장을 주지 않고 배탈을 일으키는 방법도 미리 파악했다. A군은 이 음료를 보온병에 담아 학교 사물함에 가져다 놓았다. 증거를 없애기 위해 남은 제초제는 등굣길에 쓰레기차에 버린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제초제를 섞은 음료를 담은 보온병이 A군의 아버지가 사은품으로 받은 것이란 사실을 확인한 경찰의 추적에 덜미를 잡혔다. 경찰은 A군을 상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광명=유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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