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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 다이어리 <18> 버바 왓슨이 5억8000만원 짜리 시계를 차는 까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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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미국의 장타자 버바 왓슨의 손목이 최근 화제가 됐다. 그 팔에 걸린 시계의 가격이 52만5000달러(약 5억8000만원)나 된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리처드 밀이라는 럭셔리 브랜드에서 왓슨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것인데, 정교하면서도 엄청난 장타를 치는 그의 몸에서 생기는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고 한다. 그래도 너무 심하다는 얘기가 미국 골프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왔다.

“상금으로 수십억원을 벌고, 기업들로부터 그 이상의 후원을 받는 부자 선수라지만 웬만한 사람의 집값보다 비싼 시계를 차고 다니는 것이 적절한가”라는 지적이다.

문제가 생기자 왓슨은 “산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맞는 말일 것이다. 요즘 정상급 프로 골퍼들은 돈 내고 사는 것이 거의 없다. 나상욱은 “PGA 투어 카드를 받은 이후 레스토랑 이용권부터 주방용품까지 각종 물건을 보내는 업체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골프는 아마추어와 무명 프로골퍼들에게는 비싼 운동이지만 유명 선수가 되면 모든 것이 공짜이거나 써주는 대가로 오히려 돈을 받는 매우 자본주의적인 스포츠다.

골프에서 시계의 실용적인 효용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육상·수영처럼 기록을 재는 스포츠도 아니고, 축구나 농구처럼 경기 시간을 재는 것도 아니다. 골퍼에게 시계가 필요할 때는 티타임에 맞춰서 티잉그라운드에 나타날 때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골프에 시계는 자주 나타난다. 세계랭킹 1위 리 웨스트우드와 차세대 황제로 꼽히는 로리 매킬로이 등이 가장 비싸다는 오데마 피게를 차고 다닌다. 과거에도 골프에는 시계가 종종 등장했다. 1860년 열린 초대 브리티시 오픈 챔피언 윌리 파크는 동료 프로골퍼들을 이끌고 파업을 일으킨 적이 있다.

“재주는 프로 골퍼가 부리는데 돈은 주최 측에서 다 가져간다. 선수의 권익을 보호하라”면서 대회 보이콧을 주동했다. 당시 프로 골퍼의 위상은 요즘 캐디보다 훨씬 낮았고 아마추어 골퍼에게 얻어맞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에 파업을 일으킬 만했다. 그러나 그가 파업을 주동하게 된 직접적 동기는 시계였다. 한 귀족이 파크에게 한 라운드 동안 시계 위에 공을 올려놓고 티샷을 하면서 시계에 흠집을 내지 않는다면 시계를 주겠다고 했다. 파크는 정교한 임팩트로 시계에 흠집을 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 시계를 주겠다고 약속한 귀족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약속은 물거품이 됐다. 그 분노 때문에 동료 프로 골퍼들을 이끌고 파업을 일으킨 것이다.

골퍼처럼 시계는 욕망의 대상이다. 특히 남자들이 그렇다. 남자가 할 수 있는 사치와 액세서리는 시계뿐이다. 여성과 마찬가지로 남자도 과시욕이 있는데 여성들이 비싼 가방이나 목걸이, 팔찌에 그러듯 남자들은 고급 시계를 차면서 내가 잘나간다고 자랑하려는 경향이 있다. 남성들은 자동차로 대표되는 기계를 좋아하는데 시계는 정밀 기계이면서 예술이다.

시계회사는 그런 골퍼의 욕망을 활용한다. 오데마 피게와 오메가는 마케팅의 가장 큰 부분을 골프에 쓰고 있다. 골프는 고급 스포츠의 이미지가 풍기며 시계를 차고 경기할 수 있는 스포츠이기도 해서다.

오메가는 두바이 마스터스와 유러피언 마스터스, 월드컵의 타이틀 스폰서를 하며 세르히오 가르시아, 미셸 위에게 시계를 채웠다.

롤렉스는 여자 골프 세계랭킹을 만든 회사다. 주요 투어의 첫 우승자들에게 “대단한 업적을 이룬 당신은 우리 시계를 찰 만하다”면서 시계를 준다. 윌리 파크가 파업을 일으킨 지 150년이 지난 현재 프로 골퍼의 위상은 상전벽해가 됐다. 아마추어 골퍼에게 툭하면 얻어맞던 그들은 5억8000만원짜리 시계를 공짜로, 혹은 시계를 차는 대가로 돈을 받을 정도로 귀족이 됐다.

시간은 세상을 바꿨다. 시계는 골프처럼 욕망인 동시에 메시지다. 골프는 우리 모두에게 약점이 있다는 것을, 세상은 아름답지만 남아 있는 홀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알려준다. 시계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재깍거리는 초침은 그 순간 순간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알려준다.

양용은은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황금빛 롤렉스 시계를 샀다. “큰 일을 한 내 자신에게 뭔가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직도 그 시계를 찬다. 시계를 볼 때 현재의 시간을 알아내면서 과거의 영광을 기억한다. 밝은 미래도 그와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

성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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