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촛불은 꺼지기 전에 가장 밝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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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규
경제부문 기자

“글쎄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자동차 부품업체인 유성기업이 23일부터 3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는 이유를 묻자 내로라하는 자동차 애널리스트들도 말끝을 흐렸다.

 19일 이전까지만 해도 증권가에선 유성기업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회사 정보에 나와 있는 내용, 피스톤링을 생산하는 자동차 부품회사라는 정도만 알 뿐이었다. 상장된 지 23년이나 됐지만 애널리스트가 보고서 한번 써본 적이 없는 회사였다. 당연히 일반투자자의 눈길을 끈 적도 없었다. 2594만 주가 상장돼 있지만 하루 거래되는 주식은 1만~7만 주 남짓이었다. 증권가에서 말하는 이른바 ‘소외주’였다.

 이 때문에 유성기업이 19일 “주간 2교대제, 월급제 요구와 관련한 파업으로 아산공장과 영동공장의 생산을 중단한다”고 공시할 때도 크게 관심을 둔 투자자는 없었다. 당일 주가는 9.93% 급락했다. 기업이 노사 분규로 생산을 못한다고 하니 투자자가 주식을 파는 건 당연한 수순으로 보였다.

 하지만 반전은 며칠 뒤 찾아왔다. 21일 현대차가 “유성기업의 파업으로 카니발 등 일부 제품의 생산이 중단됐다”고 밝히자 온 나라가 깜짝 놀랐다. ‘어떤 회사이기에 시가총액 50조원이 넘는 현대차의 생산라인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주말이 지나고 23일 장이 열리자마자 개인들은 이 회사의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회사가 파업으로 생산이 중단됐는데도 주가는 오히려 춤을 췄다. 19일 2540원이었던 이 회사 주가는 25일에는 3980원으로 57%나 올랐다. 하루 거래되는 주식 수도 1000만 주를 훌쩍 넘었다. ‘사재기 열풍’ 수준이다.

  이를 바라보는 전문가의 시각은 우려 그 자체다. “그동안 주가가 저평가된 것은 맞지만 이렇게 오르는 것은 투기적 수요”(조수홍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 “이 회사가 생산하는 부품이 독보적인 게 아니라 부품의 수익성이 낮아 한 기업으로 몰린 것”(안수웅 LIG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이라는 설명도 나온다.

 요즘 이 회사 주식을 사들이는 투자자는 대부분 개인이다. 기관투자가는 거의 없다. 유성기업의 상한가 행진을 보며 ‘촛불은 꺼지기 전에 가장 밝다’는 증권가 격언을 떠올리는 게 기자만일까.

김창규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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