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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억 들인 동양 최대 ‘용담호 분수’ 6년째 가동 중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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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세금 낭비를 막으려면 지방의회가 나서야 합니다. 중앙일보가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와 함께 ‘지방의회 세금감시 서약식’을 후원하는 이유입니다. 오늘(25일) 인천광역시 의회부터 시작합니다. 서울, 경기, 울산을 거쳐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 의회 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세감시(稅監市)-시민 CSI’의 활동도 계속됩니다. ‘최초·최대’라는 허영에 집착하다 헛돈 쓴 전북 진안의 고사분수대와 전남 해남의 인공해수욕장을 진단했습니다.


세금 낭비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다. 중앙일보가 세금감시단으로 위촉한 ‘세감시(稅監市)-시민 CSI’(과학수사대·단장 이석연 전 법제처장)는 그 첫 번째로 시장·군수를 겨냥한 공무원의 과잉 충성을 꼽았다. 두 번째는 불법·졸속 행정이었다. 그리고 이번엔 시장·군수의 허영이다. 허영의 특징은 최대·최고·최초에 대한 집착이다. 치적 자랑을 넘어 자신이 ‘전국구급’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세금을 물처럼 쓰는 경우다. 대표적인 사례가 ‘동양 최대의 고사 분수’(전북 진안)다. 공기업도 나섰다. ‘국내 최초의 인공 해수욕장’(전남 해남)은 그래서 나왔다. 상당수의 시장·군수는 기네스 인증을 받으려다 사기까지 당했다.

2005년 40억원을 들여 전북 진안군 용담호에 설치한 동양 최대 규모의 고사분수대(흰색 원 안 구조물). 가뭄으로 인한 수량 부족과 전기료 등 막대한 관리 예산 문제가 겹쳐 6년째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진안군 제공]


 “욕먹더라도 폐기 처분했으면 좋겠다.”

 진안군 용담호에 있는 고사 분수대를 놓고 군 관계자가 실토한 얘기다.

 고사 분수대는 2005년 4월 국비 36억원에 군비 4억원을 보태 만들었다. 연간 예산 2410억원에 재정자립도가 11.8%(전국 평균 52.2%)에 불과한 군으로서는 큰마음 먹은 사업이다. 170m 높이까지 물줄기를 쏠 수 있는, 당시 동양 최대 규모다. 게다가 물로 장막을 만들고 레이저를 쏘아 영상을 만드는 워터스크린과 음악분수 기능까지 갖췄다. 그러나 2006년 8월 가동을 중단한 뒤 6년째 방치돼 있다.

 분수대의 출발은 2000년 상전면 일대가 물에 잠긴 뒤 전국 5위 규모의 용담댐이 생기면서부터다. 보상금으로 국비 50억원이 내려왔다. 주민들은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놓기 원했다. 문제는 건설비(100억원)였다. 대안이 분수였다. 동양 최대의 고사 분수를 만들면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이유가 제시됐다.

 분수대는 겨울철을 제외하고 하루 평균 네 차례 가동됐다. 초기에는 그나마 주민들이 찾았다. 그러나 2006년 여름, 가뭄으로 용담호 수위가 낮아지자 가동이 중단됐다. 관광객이 끊겼다. 주변이 황량해 분수를 제외하곤 볼거리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군 재난관리과 배철기 과장은 “가뭄도 원인이지만 연간 2억원가량 들어가는 전기료를 군 예산으로 감당하는 것도 부담이었다”고 털어놨다. 설치 장소의 타당성, 관광객 유치 전략, 유지관리비 등을 따져보지 않은 결과다.

 결국 이전이 결정됐다. 군 의회는 이전비용 7억2000만원을 승인했다. 김현철 의원은 "이전 후에도 제대로 운용이 안 되면 추가로 세금을 낭비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어 다들 걱정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러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군 관계자는 "전임 군수 때 일이고, 사업추진 실무자들도 모두 자리를 옮겼다”고 말했다. 당시 책임자였던 임수진 전 군수는 "사업 실패에 대한 도의적 책임은 있다”면서도 "임기 말에 추진된 사업이다 보니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데다 일부 군의원들이 사업을 주도했다”고 해명했다. 임 군수는 2006년까지 3연임했고, 2007년 농어촌공사 사장에 취임했다.

 용담호 고사 분수는 이제 교육사례가 됐다. 군 관계자는 "타 지자체 공무원들이 견학 온다. 전국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있다”며 고개를 떨궜다. 시민 CSI의 이석연 단장은 "세금을 낭비한 시장·군수나 공무원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국민대표소송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시민 CSI의 이원희 교수(한경대 행정학)는 "외형적인 성과에 급급해 타당성 검토 없이 사업부터 벌인 것이 문제”라며 "유지관리비용 탓에 세금이 이중으로 낭비됐다”고 지적했다.

한국관광공사가 2008년 85억원을 들여 전남 해남 화원면에 개장한 국내 최초의 인공해수욕장 ‘블랑코비치’. 펄이 쌓이고 녹조현상으로 인한 수질 악화로 3년째 개장하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8년 7월 85억원을 들여 개장한 해남 화원면의 불랑코 해수욕장은 공기업의 과욕이 문제다. 한국관광공사가 ‘한국의 두바이’를 외치며 12만3000㎡ 면적에 모래를 깔아 해변을 조성했다. 개장 당시 ‘국내 최초의 인공 해수욕장’이라는 선전문구가 요란했다. 그러나 2009년부터 올해까지 3년째 폐쇄돼 있다.

 이유는 펄과 녹조다. 결국 공사는 2009년 목포대 산학협력단에 1억7000만원을 들여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썰물 때 유속이 낮아 펄이 지속적으로 쌓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답이 나왔다. 환경적합성 검토를 제대로 안 했다는 얘기다.

 한국관광공사 서남지사 관계자는 “5월 말부터 해수욕장 물을 뺀 후 녹조를 제거하고, 수문 조절을 통해 펄의 유입을 최대한 막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개장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내년 4월까지 상태를 봐야 한다. 보완해야 한다면 추가 예산이 들어간다. 시민 CSI의 양지열 변호사(법무법인 한강)는 “주변 환경이나 해양 여건을 고려해볼 때 인공 해수욕장이 적절했는지 의문이 든다”며 “과학적 검토를 부실하게 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탐사기획부문= 고성표·권근영·박민제 기자, 이정화 정보검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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