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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닥나무꽃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19호 02면

“종이를 흔들면 찰랑찰랑 소리가 납니다.”
호림박물관 박광헌 학예연구사의 표정에 순간 황홀함이 번졌습니다. 서지학을 전공한 그는 고려 때 만들어진 초조대장경 원본을 처음 보았을 때 감동을 잊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옛말에 “비단은 오백 년을 가고 종이는 천년을 간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그 종이를 느껴 보았던 거죠.
고려의 종이는 중국에서도 유명했습니다. 기록을 보면 “고려의 닥종이는 빛깔이 희고 사랑스러워 백추지(百錘紙)라 부른다” “고려 종이는 누에고치 솜으로 만들어져 종이 빛깔은 능라비단같이 희고 질기기는 비단 같은데 글자를 쓰면 먹물을 잘 빨아들여 소중히 여겨진다. 이는 중국에도 없는 귀한 물건이다”라는 구절이 남아 있죠.

18일 서울 신사동 호림박물관에서 개막한 ‘1011_2011 천년의 기다림, 초조대장경 특별전’에 가보면 1000년의 시간을 기록한 종이가 어떤 표정을 갖고 있는지 체감할 수 있으실 겁니다. <관계기사 6~7면>

종이를 만드는 것은 닥나무 껍질이지요. 그런데 서울에도 닥나무가 있습니다. 서울 구기터널 근처 삼성출판박물관 건물 앞에 있습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1990년 삼성출판박물관 개관기념으로 식수했는데 회사가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나무도 함께 왔지요.
그 닥나무에 꽃이 활짝 피었다는 삼성출판박물관 김종규 회장님 전화에 부리나케 가보았습니다. 옅은 보라색의 실 같은 꽃이 가지 곳곳에 피어 있었습니다. 봄을 보내는 봄비를 맞으며 1000년의 미소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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