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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공기업 개혁 대신 보은 잔치로 끝낼 건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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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호 02면

지난달 어느 기업인이 사업 협의차 공기업 기관장을 만날 일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를 볼 수 없었다. 기관장이 4·27 보선 현장에 지원을 가느라 자리를 계속 비웠기 때문이다. 그 공기업의 직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눈 팔지 않고, 열심히 일했을까. 이런 게 우리 공기업의 현주소다.

공기업 123곳의 기관장이 올해 안에 교체된다. 감사까지 합치면 모두 217개의 자리가 생긴다. 그 외에도 임원·사외이사처럼 눈에 잘 띄진 않지만 따뜻한 자리가 얼마나 더 있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2008년 출범하면서 임명한 공기업 기관장·감사의 임기가 올해 줄줄이 만료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이 정부가 2년이 채 남지 않은 점을 감안할 때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인사 잔치인 셈이다.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벼르는 사람, 실세들이 챙겨 줘야 할 사람, 줄을 대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 등이 뒤엉켜 볼썽사나운 경쟁을 하는 모양이다. 실제로 올 들어 지금까지 임명된 공기업 기관장·감사 79명 중 정치인(31명), 관료(19명)가 50명에 달했다. 이 정부에 지분이 있는 정치인들이 탐욕스럽게 자리를 차지하고, 그 틈바구니를 비집고 영리한 관료들이 둥지를 튼 결과다. 정치인과 관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낙하산 공화국’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자리를 차지한 기관장·감사가 경영을 제대로 할 리 없다. 우선 낙하산이라는 자격지심에 직원들에게 선심을 팍팍 쓰게 마련이다. 적자가 나는데도 성과급을 주고, 해외연수를 보낸다. 그러면서 낙하산 기관장과 노조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가 된다. ‘신이 내린 직장’이 바로 낙하산 관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낙하산 기관장들은 어차피 한번 임기를 마치면 나갈 거라는 생각에 단기 성과에 급급한다. 그러는 사이 공기업에는 부실이 쌓이고, 허술한 관리를 틈타 부패도 피어난다.

공기업의 방만경영과 비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진보를 표방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공기업 비리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2007년 말 대선 때 국민이 이명박 후보를 선택한 데는 공공부문을 개혁해 달라는 열망이 담겨 있었다. 작은 정부로 돌아가 세금 거두는 것을 두려워하고, 세금을 내 돈처럼 아껴 쓰기를 기대했다. 젊은이들이 공(公)자 붙은 곳에 취직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기형적 세상을 바로잡아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 정부에서도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정권 주변 사람이나 관료가 전리품을 나눠먹듯 공기업 자리를 탐내는 상황이 이어졌다. 비리 소식이 끊이지 않았고, 그때마다 국민의 절망은 커졌다. 이제라도 제대로 된 사람을 뽑아 공공부문을 개혁하느냐, 아니면 보은인사 잔치로 마무리하느냐는 정부의 선택에 달렸다. 물론 그 선택에 대해선 국민이 엄중히 평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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