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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림되는 부부 불화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19호 15면

“저는 아버지 같은 남자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또 엄마 같은 여자를 만날까 두려웠어요.”
30대 중반의 K씨는 껍데기만 남자다. 결혼을 했으나 아내와 성관계를 피한다. 더욱이 아내의 요구에 마지못해 임하는 성관계에서 발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부부의사가 쓰는 性칼럼

너무나 수동적인 남편의 모습에 아내는 결국 화를 내고, 그렇게 몰아세우는 아내를 보면 K씨는 무능한 아버지를 몰아세우던 어머니의 날카로운 모습과 어찌 그리 똑같은지 한숨만 나온다. 그런데 K씨가 하필이면 거친 여자를 ‘재수없이’ 아내로 맞은 게 아니다. K씨의 내면은 엄마와 아내를 부정적으로 동일시한다. 끝없는 회피에 지친 아내는 비난이란 화살을 쓰게 된 면도 있다. K씨의 회피는 부모 사이의 관계가 그 뿌리다.

“어릴 때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친구 부모님 사이가 너무 좋더라고요. 스킨십도 하고. 저의 눈엔 그게 얼마나 어색하고 징그럽고 천박하게 느껴졌던지….”

K씨는 부모 사이에 심각한 불화의 틈바구니에서 컸다. 아버지는 무척 일방적이었고 맞대응 하는 어머니 역시 몹시 날카로웠다. 비난과 분노가 눈덩이처럼 커지면 그 고통은 고스란히 아이들이 받는다. 문제 해결력이 부족한 아이들이 겪는 고통은 어른에 비해 훨씬 크다. 심각한 불화 속의 아이들은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 위에 서있는 것과 같다. 정서도 불안정하겠지만, 아이들의 잠재의식 속에 남녀 사이나 결혼은 상당히 위험스러운 ‘전쟁’이라는 두려움이 생긴다는 게 더 무섭다.

K씨가 그런 고통 속에서 자기를 지킨 방법은 ‘회피’다. 부모의 심각한 갈등과 아버지와 어머니의 거칠고 부정적인 모습, 그리고 결국 부모의 이혼으로 K씨에게 남은 것은 반복된 분노와 좌절감. 이런 심적 고통을 벗어나는 길은 문제에 눈을 감아버리는 회피가 당장은 제일 편하다.

더 큰 불행은 K씨의 아픔이 어른이 돼서도 반복되고 확대됐다는 데 있다. 남자아이는 아버지를 본보기로 자신의 남성성을 배운다. 즉 아버지는 남자아이의 모델이다. 어머니를 통해서는 자기가 미래에 경험할 여성의 존재를 경험한다. 아버지의 거칠고 폭력적인 모습을 K씨는 닮고 싶지 않아 부정한다. 그래서 K씨는 부드럽고 수동적이다. 또 어머니가 그러했듯 자신도 맹비난을 받을까 아내와의 관계에 무의식적 불안에 사로잡힌다. 그러다 보니 아내에게 다가가기 힘들다. 불안한 상태에서 성반응은 더욱 부실하고, 반복된 실패에 아내의 비난마저 보태지면 성생활은 피하고만 싶지 즐거운 놀이가 되지 못한다.

인간 관계 중 가장 강렬하면서도 기본적인 관계가 바로 부부 사이의 성관계다. 한 사람이 상대 배우자와 어떤 성관계를 하는지, 어떻게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분석하다 보면 그가 성장해온 배경의 상처와 대인관계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K씨도 그 부분을 치유하면서 부부생활과 성기능의 안정을 회복했다.

5월. 부모에게 아이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부부 사이의 불화를 적극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다. 지금 내 아이가 불화 속에 자라고 있다면 그 아이의 미래 성생활이나 결혼도 부정적인 영향을 이미 받고 있는 것이다. 부부 사이의 갈등과 불화는 아이에게 대물림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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