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일렉 네 번째 매각 협상도 헛바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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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이 헛바퀴를 돌고 있다. 지난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란계 다국적기업 엔텍합그룹과 채권단(캠코와 우리은행 등)의 이견이 큰 탓이다. 대우일렉트로닉스의 매각 협상은 이번이 네 번째다. 대우전자 시절인 1999년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간 뒤 구조조정을 거쳐 채권단은 2006년 이후 매각 작업에 들어갔으나 번번이 결렬됐다.

 엔텍합은 현재 인수 대금을 인하하는 문제를 놓고 채권단과 맞서고 있다. 엔텍합그룹은 계약금으로 578억원을 냈다. 잔금 4137억원은 내지 않고 있다. 일이 꼬인 건 거래처 유지 보장 문제 때문이다. 엔텍합은 지난해 인수 계약을 맺을 당시 보쉬와 일렉트로눅스 등 대우일렉트로닉스의 기존 거래처가 최소 5년간 거래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채권단은 이를 수용했다. 하지만 일부 거래처가 ‘5년 거래 보장’ 동의서 작성에 난색을 표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동의서를 빼고 매각 협상을 진행하자는 채권단의 주장에 엔텍합은 계약상의 변경 요인이 발생한 만큼 인수 대금 600억원을 깎아달라고 요구했다. 계약 전 실사 기간 연장 요청을 채권단이 거부해 기업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는 것도 엔텍합 측이 내세우는 가격 인하의 이유다.

 채권단은 거래처 동의서와 관련한 주장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계약 뒤 기업 가치가 떨어졌다고 가격을 깎아달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히려 엔텍합의 자금 조달 능력에 의문을 갖고 있다. 엔텍합은 채권단 동의 아래 대금 지급일을 두 번이나 연장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엔텍합은 인수 대금의 일부를 국내에서 조달할 계획이지만 실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채권단은 이달 말까지 결론을 내겠다는 입장이다. 매각 주간사인 우리은행은 엔텍합의 가격 인하에 대한 채권금융기관의 의견을 모으고 있다. 만약 채권단이 매각 대금 인하를 수용하지 않고 엔텍합이 인수 잔금을 지급하지 못하면 협상은 결렬될 수밖에 없다.

 이번 매각이 무산되면 채권단은 차순위자인 스웨덴의 일렉트로룩스와 매각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채권단 관계자는 “재매각 절차를 다시 밟으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만큼 일렉트로룩스와 협상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일렉트로룩스가 제시한 인수 희망가격이 낮다는 걸 우려한다. ‘헐값’에 대우일렉트로닉스를 넘기면 공적자금의 회수에도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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