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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100곳 3년치 진학 데이터 분석 … ‘갈 만한 대학’ 콕 찍어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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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34’ 올해 성균관대 한문교육과에 입학한 이정준(20)씨가 지난해 서울 배재고에 다닐 당시의 학년·반·번호다. 교사들이 개발한 ‘정시지원 상담 프로그램’에 이씨의 이름과 학번을 입력하자 그의 2011학년도 수능성적(표준점수·백분위·등급)이 주르륵 떴다. 이번엔 희망 대학 지역인 ‘서울’과 지원 계열인 ‘인문’을 입력했다.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중앙대 심리학과 등 지원 가능 대학과 모집단위가 검색됐다. 상담 프로그램의 예측 결과는 적중했다. 이 프로그램을 만든 주인공은 배재고 이정형(45·정보과) 교사다.

글=최석호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배재고 이정형 교사가 학교 교사들과 함께 개발한 ‘상담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띄워놓고 자신의 반 학생들과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최명헌 기자]

전국 6만명 수험생의 대입결과 활용

“수능을 치르고 난 학생들이 제일 처음 찾는 곳이 사설기관에서 주관하는 입시설명회장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학교에서 제대로 못하니 학원으로 몰리는구나’ 자책감이 들었어요.” 그가 학교 교사들과 함께 대입 상담프로그램을 개발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다.

2008년 수시모집 원서접수가 끝나고 이 교사는 서울시교육청 진학지도지원단, 서울진학지도협의회 소속 교사들과 회의를 열었다. 100여 개 고교 전년도 졸업생들의 수능성적과 지원대학·학과 당락 여부 등 실(實)데이터를 모으기로 했다. “학교 교사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학생들의 표본 데이터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예상’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 6만여 명 학생의 대입 결과를 바탕으로 수능점수대별 지원가능선을 정확히 ‘예측’하기로 한 거죠.” 백분위와 표준점수 조합, 환산점수 조합 등 다양한 카테고리를 만들어 학생별로 유리한 점수조합을 찾아내고, 대학·학과별로 3개년치의 경쟁률·합격선을 분석하는 등 2년여의 노력 끝에 지난해 ‘정시지원 상담프로그램’이 탄생했다.

그는 2007년부터 ‘수시 전형유형 검색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있다. 모집시기와 지원대학, 모집단위, 전형유형을 입력하면 지원자격과 수능 최저학력기준, 전형방법, 학생부 반영방법, 전년도 경쟁률, 동점자 처리기준 등 전형과 관련한 모든 내용이 뜬다. 그는 “지난해엔 수년간 축적한 13만 건의 ‘학생부 성적에 따른 진학대학 데이터’를 바탕으로 합격 가능성까지 예측하도록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했다”며 “3000여 개에 달하는 수시전형 방법을 몰라 정시모집에만 매달리는 지방고교 학생들에게까지 길잡이를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매일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학생 2~5명 상담

사실 그는 늦깎이 교사다. 대학에서 전자계산학과를 전공한 뒤 직장생활을 하다 우연한 기회에 컴퓨터학원 강의를 맡았다. 여기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흥미를 느꼈다. 서른셋에 고려대 교육대학원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했다. 교사가 된 건 2002년, 그의 나이 서른여섯살 때다.

“2004년 처음 담임을 맡았어요. 대교협이나 교육청에서 나오는 입시책자부터 사설기관 자료집까지, 1년에 50권 이상은 읽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책만으론 한계가 있었다. 학교의 ‘입시 대가’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한영외고 주석훈 교사는 “학생들이 모의고사를 치른 뒤엔 반드시 찾아와 지도방법을 의논했고, 전화나 e-메일로 매일같이 조언을 구하는 열정이 있었다”고 그를 기억했다.

줄곧 3학년 담임을 맡으면서 그는 요즘도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하루 2~5명의 학생과 상담을 진행한다. ‘학생에 대해 깊숙이 알지 못하면 제대로 된 입시지도를 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은 적성검사 등 다른 전형으로 유도하고, 가정형편 등 특이사항을 고려해 맞춤식 전략을 짠다. 그는 상담과정에서 신뢰를 주려고 반 학생 개개인의 성적대를 일삼아 외운다. 지난해엔 내신 2.5등급, 수능 언어·수리·외국어 2등급, 사탐 평균 4.5등급의 학생을 ‘사회기여자 전형’에 지원하도록 해 연세대 철학과에 합격시키기도 했다.

주말엔 입시설명회장에 출근 도장

이 교사는 고3 딸에게 제일 미안하다고 했다. 거의 매일 야간자율학습을 지도하느라 오후 11시가 다 돼서야 집에 들어가기 때문에 정작 딸에게는 신경을 쓰지 못한다. “우리 학교, 우리 반 아이들이 있는데, 내 딸 챙기느라 우리 새끼(?)들에게 소홀하면 선생 자격이 있다 하겠습니까? 딸 아이의 진학지도는 그 학교 선생님에게 맡기는 거죠.” 퇴근해서도 진학지도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하느라 새벽에야 잠이 들고, 주말이면 대학입시설명회장부터 사설기관에서 주관하는 입시설명회장까지, 여기저기 설명회장을 따라다니느라 지방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여름방학부터 ‘진로진학 상담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신청해 놓았다. 여름·겨울방학 동안 500시간의 연수를 받은 뒤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진로진학 상담교사가 되겠다는 계획이다. 이 교사는 “진로진학 상담교사로서 교내외 활동을 하면서 제대로 된 진학상담 프로그램을 구현해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사를 만난 11일, 오후 4시가 되자 그가 “그만 인터뷰를 끝냈으면 한다”고 했다. 상담 스케줄이 잡혀 있어 빨리 가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상담을 진행할 학생들의 자료를 챙기는 그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그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반 학생들과의 상담시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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