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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승자의 재앙' 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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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윤증현(사진)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은 13일 금융회사들의 과열 경쟁이 업계 전체의 공멸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윤 위원장은 이날 금융연구원 초청강연에서 "최근 주택담보 대출이나 증권 거래, 펀드 판매 등에서 한정된 고객을 두고 유치 경쟁이 심화하면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해 가장 많은 고객을 확보한 금융사가 수익성 악화로 오히려 곤경에 처하는 '승자의 재앙'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수요가 한정된 기존 시장에서 점유율 전쟁을 치르다 보면 다 같이 공멸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며 "과당경쟁을 자제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수익과 성장의 새로운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위원장은 또 "금융회사와 금융인들이 단기실적을 높이기 위해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 말고 긴 호흡을 갖고 비전을 설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과당경쟁 우려=금융권은 윤 위원장의 경고가 최근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사들의 경쟁이 도를 넘고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한다.

은행들은 올 들어 재건축단지를 중심으로 하는 집단 주택담보 대출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금리 인하 경쟁을 벌여왔다. 대출 기준 금리 인하와 지점장 전결에 따른 추가 할인은 물론 대출 은행을 갈아타면 금리를 우대해 주는 등의 방식으로 고객들에게 최저 연 3%대의 금리를 제시하고 있다.

은행이 돈을 굴려 얻는 수익이 연 4%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역마진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증권사들도 신규 고객에게 일정 기간 매매수수료를 면제하는 등의 방식으로 고객유치에 나서고 있다.

◆칼 빼드는 금융 당국=금융감독 당국은 이 같은 경쟁이 아직 금융회사의 수익성과 건전성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냥 둘 경우 개별 회사의 부실은 물론 경제 전반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윤 위원장은 이날 "금융회사는 '경쟁에 이길 수 있는지'는 물론 '경쟁을 감내할 능력이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경고했다. 카드사들의 무리한 현금 서비스 경쟁을 방치했다가 극심한 후유증을 겪었던 '카드대란'의 경험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최근 각 은행에 공문을 보내 주택담보 대출 경쟁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편법으로 대출한도를 늘리거나 다른 은행의 주택담보 대출을 갈아타는 고객에게 원가보다 낮은 금리를 적용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요구다.

한 사람에게 여러 차례 대출을 내주거나 재건축단지 이주민들에게 집값의 60%를 넘는 대출을 내주는 것도 금지하도록 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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