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신경제'가 뭐예요?] 경기 좋아져도 물가 안올라

중앙일보

입력

미국의 '비즈니스위크지(誌)' : "미국 경제는 만들어 파는 물건이 크게 늘어 일자리 없는 사람(실직자)들이 줄어도, 물건 값(물가)은 오르지 않는 '신경제(New Economy)' 상태다. "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誌)' : "아니다. 그것은 잠깐 나타나는 현상이다. 상품 생산이 늘어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려우면 월급을 더 많이 줘야 한다. 물건 만드는 사람에게 돈을 더 주면 물건 값도 오를 것이다. "

미국과 영국을 대표하는 경제 전문지들이 '신경제' 를 놓고 말다툼을 벌이고 있어요. 신경제가 뭐길래 세계적으로 유명한 잡지들이 "내 말이 맞다" 며 다투고 있는 것일까요?

신(新)경제를 알려면 '구(舊)경제' 나 '헌 경제' 를 먼저 알아야겠죠? '경기가 좋다', 나쁘다'' 는 말을 많이 들었을 거예요. 이는 '경제 상태가 좋다' 는 뜻입니다.

한 나라에서 만들어 팔고 사는 물건이 크게 늘었다는 얘기지요. 예를 들면 1백만원어치 상추를 생산해 팔던 영이네가 1백50만원어치의 상추를 생산하게 됐다는 겁니다.

사람이 키가 크고 몸무게가 늘면 성장한다고 하지요. 경제도 크기가 커지면 '경제가 성장한다' 고 말해요.

물건을 더 많이 만들어 팔고 사면(경제성장) 어떤 일이 생길까요□ 영이네는 상추를, 철이네는 배추를 생산해 판다고 상상해봐요. 상추와 배추를 사려는 사람이 많게 되면 이들은 생산을 늘릴 거예요. 하지만 더 많이 생산하려면 일 할 사람이 필요하겠죠?

그러면 주변에 일자리가 없는 사람(실업자)들을 데려다 쓸거고요. '경제가 성장하면 실업률이 줄어든다' 는 말도 이래서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을 거의 다 쓰고 몇 명 남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요□ 영이네와 철이네는 남은 사람을 서로 데려가려고 '아우성' 칠 거예요. 이것도 모자라 상대방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돈 더 줄 테니 우리 밭에서 일하자" 고 말하기도 할 겁니다.

이렇게 되면 일하는 사람(근로자)의 월급(임금)은 자연스레 오르는 것이지요. 일 하는 사람의 월급만 오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아요. 상추.배추 값도 뛸 겁니다.

영이네 집에서 한 사람이 상추를 10만원어치(1백상자×1천원)생산했다고 할까요. 이 가운데 8만원이 일하는 사람 월급이었고 나머지는 영이네가 가져갔지요.

그런데 일하는 사람 월급이 9만원으로 오르면 어떻게 되겠어요. 영이네가 예전과 똑같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는 상추 값을 상자당 1백원씩 올려야 할 겁니다.

또 1백원 비싸게 받아도 사려는 사람이 많을 테니 영이네는 주저없이 올릴 거고요. 더 많은 상품을 만들면 상품 값이 뛰는 이유가 또 있어요. 영이네는 10명이 일하면 한 사람당 1백 상자씩 생산하기에 알맞은 크기의 밭을 갖고 있었지요. 이때 일하는 사람이 늘면 어떻게 되겠어요. 상추 씨를 뿌릴 땅은 좁은데 말이에요. 새로 들어와 일하는 사람은 1백 상자보다 적은 양(예를 들어 90상자)을 생산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 다음 사람이 생산한 상추의 양(80상자)은 더 적어질 거고요.

이렇게 노동자 한 사람을 더 썼을 때 추가로 만들어진 생산물(한계 생산물)이 줄어드는 것을 '수확한 양이 줄어든다' 해서 '수확체감의 법칙' 이라고 하지요.

예전엔 8만원 받는 사람이 10만원어치를 수확했는데 이제는 9만원어치밖에 생산하지 못하게 된 것이죠. 이때도 영이네가 예전과 같은 수준의 이익을 남기려 한다면 상추 값(물가)을 올려야 할 겁니다.

이렇게 경제가 성장하면 일 없는 사람이 줄고 물가가 오르게 된다는 것이 '헌 경제' , 즉 전통 경제이론이지요. 물론 경기가 안 좋을 땐 그 반대의 일이 벌어지겠죠□

또 실업률이 줄어들면 물가가 오른다는 것을 그래프로 나타낸 것이 바로 '필립스 곡선' 이지요. 1958년 A.W.필립스라는 영국인이 물가와 실업률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내 그의 이름을 따 '필립스 곡선' 이라 해요.

흔히 "경제성장과 물가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수 없다" 는 것도 이런 이론 때문에 하는 말이지요.

그런데 요즘 미국에선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경제가 계속 성장하고 있는데도 물건 값은 오르지 않는 거예요.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를 예전의 이론으론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신경제' 라고 말하는 것이고요.

이들은 정보통신.컴퓨터 분야의 기술이 크게 발전해 전통 경제학의 수확체감의 법칙이 아닌 '수확체증'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하지요. 수확체증은 말 그대로 사람이나 기계 등을 하나 더 썼을 때 추가로 만들어진 생산물이 그전보다 많이 늘어나는 것을 뜻해요.

영이네가 사람을 더 뽑아 써서 월급이 8만원에서 9만원으로 올랐다고 생각해 봐요. 보통 때 같았으면 수확체감의 법칙이 일어나 상추값을 올릴 겁니다.

그런데 영이네가 비닐하우스라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고 쳐요. 예전과 달리 겨울에도 상추를 재배할 수 있어서 한 사람이 1백20상자씩 생산한다고 하면 영이네는 3만원(12만원-9만원)이 남죠.

상추 값을 올릴 필요도 없고요. 1백상자 생산하던 사람이 1백20상자를 수확하니 수확체증현상이 벌어진 것이지요.

신기술로 경기가 좋아져서 실업률이 줄어드는데도 물가는 오르지 않게 되는 거죠. 미국이 바로 이런 경우라는 겁니다.

위의 예에서 영이네 집은 인터넷.컴퓨터 등 정보통신 관련업체로, '비닐하우스' 는 인터넷 등의 신기술이라고 보면 되지요.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윈도 같은 소프트웨어를 만들 때 처음엔 개발비 등으로 돈이 들지만 나중엔 큰 돈 들이지 않고 찍어내기만 하면 되지요. 이 경우 수확체증 현상이 생긴다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전통 경제이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생각이 달라요. 19세기 말, 20세기 초 전기와 TV.라디오 등이 발명됐을 때 당시 사람들은 물가가 상승하지 않는 경제성장이 계속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어요.

이번에도 잠깐 동안 벌어지는 특이한 현상이지 오랫동안 계속돼 전통 경제이론을 바꿀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경제이론을 바꾸는 새 현상이다' '일시적으로 일어날 현상일 뿐이다' 누구의 주장이 맞을지 지켜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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