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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뒤 최악’ 건설업 살아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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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김승배
피데스개발 사장

정부는 건설·주택시장 활성화를 위해 5·1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보름 이상 지났지만 시장의 반응은 영 시원치 않다. 아니 무관심이라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지금 건설인들이 갖는 위기감이 여느 때와 다른 데는 시장 무관심의 무게가 점점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건설 산업은 고용효과가 크고 다양한 일이 만들어지는 ‘일자리 백화점’으로 불린다. 종사자가 167만 명이고 가족을 포함하면 500여만 명의 생계가 달려 있다. 이런 산업이 무너지면 우리나라 인구의 10%가 직접 타격을 받는다. 지금 수출경기는 좋은데 내수는 시원찮고, 경제지표와 서민들의 체감경기가 다른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건설경기의 침체 때문이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올 1분기 건설투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9%나 줄었다. 감소 폭이 13년 만에 가장 크다고 한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당국의 정책은 미온적이고 단편적이며 실기(失期)까지 했다.

 국내 건설업은 정책이나 경기만 쳐다보고 사는 ‘천수답’ 업종이다. 정책 규제와 해제가 되풀이되고 경기 변동에 따라 건설업의 부침도 함께 이어지고 있다. 이런 업종 특성상 기업의 롱런은 아주 어렵다.

 이 때문에 건설업도 발상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하늘만 쳐다보지 말고 건설인 스스로 일어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제조업의 생산시스템을 빌려 공사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공법을 개발·적용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말하자면 원가를 줄여 생산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공장에서 만들어 현장에서 조립만 하는 모듈러 건축이 한 예다. 한 달 만에 집을 짓고 반년 만에 고층호텔을 완공한다면 리스크 노출기간이 짧아 이자가 많이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건설업 위기를 불러온 프로젝트파이낸싱(PF) 금융이 원천적으로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공법으로 부족한 관광 숙박시설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잠자고 있는 인적자원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건설업의 사명으로 꼽힌다. 건설기술은 20년 이상의 경험을 통해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분야다. 중동근무 시절 필자가 만난 유럽 선진국의 엔지니어는 대부분 50~60대였다. 50대 이상 임직원만으로 건설회사를 만들면 경쟁력이 대단할 것이라는 회사 선배의 역발상에 공감이 간다. 전문지식과 경험에다 지혜를 겸비한 백전노장 건설인들이 위기의 건설산업을 지켜내는 구원투수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 건설업계가 해외건설 경험을 갖춘 최고경영자(CEO)를 영입하고, 해외건설 전문인력을 육성하는 움직임은 바람직하다. 이를 통해 건설업체들은 연간 5000억 달러나 되는 해외건설 시장을 보다 적극적으로 공략할 수 있다.

 또 스마트폰처럼 콘텐트가 있는 공간상품을 개발해 반전의 계기를 삼아야 한다. 최근 프랑스 파리의 한류 열풍에서 보듯 한류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인천 송도나 제주도, 부산 해운대에 문화콘텐트가 담긴 공간을 만들면 외국 관광객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 수밖에 없다. 새로운 시장이 생겨 오랜 가뭄 속에 있는 건설업계에 단비가 될 것이다. 건설업계가 아무리 혁신에 나서더라도 정책적 지원이 없으면 공염불이 된다. 따라서 정부는 건설·부동산과 관련한 법률과 제도를 꼼꼼히 살펴 장애물을 걷어줘야 건설업이 제 역할을 하면서 국가경제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김승배 피데스개발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