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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돌이표’ 직장인 여러분, 사무실 들어서면 답답하십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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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중소기업에서 3년째 기획 업무를 맡고 있는 김모(여·30)씨. 밤샘 작업을 할 정도로 일이 많은 데다 최근엔 창의성과 생산성까지 요구받는다. 문제는 남자 동료직원과 비교해 회사의 평가가 낮다는 것. 그녀는 최근 머리에 돌을 얹어놓은 듯한 두통과 만성피로로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특별한 질병이 없다면서 스트레스반응검사(WSRI)를 권했다. 그녀의 스트레스 점수는 55점. 스트레스 관리를 위한 처방이 내려졌다. 게다가 그녀는 수축기 혈압 170㎜Hg, 이완기 혈압 110㎜Hg로 고혈압 판정까지 받았다.

화이트칼라의 건강 수준이 떨어지고 있다. 21세기 지식기반 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화이트칼라의 맞춤형 건강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게티이미지]

화이트 칼라가 ‘신음’하고 있다. 사무직은 3D를 싫어하는 구직자들의 소망.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정신노동의 강도가 높아지면서 사무직의 건강 수준이 블루 칼라보다 급격히 저하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직업병의 변화가 이를 반영한다. 올 대한의학회 국제학술지(JKMS)에는 질환별 국내 직업병을 분석한 논문 17편이 보고됐다. 논문에 따르면 1970년대에는 광산노동자에게 많은 진폐증이, 1980년대에는 중금속 중독이나 독성화학물질에 의한 피부질환이 주요 직업병이었다. 개인용 컴퓨터가 등장한 1990년대부터 뇌심혈관계 질환과 근골격계 질환이, 2000년대부터는 직무 스트레스와 관련된 정신과적 질환이 늘고 있다.

 실제 2009년 기준 노동 작업장에서 사고로 산재 인정을 받은 사람은 1746명. 이는 같은 해 뇌심혈관계·근골격계·정신과 질환으로 산재 인정을 받은 환자 수 7019명의 4분의 1에 불과한 수치다. 1998년의 경우엔 뇌심혈관계·근골격계·정신과 질환으로 산재 인정을 받은 사람이 798명으로 노동 작업장 산재 1040명보다 오히려 적었다.

 한림대 성심병원 산업의학과 주영수 교수는 “대한민국 직업병의 지도가 사무직 질환으로 다시 그려지고 있다”며 “21세기 지식기반 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화이트칼라의 건강을 중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스→면역계 혼란→돌연사로 이어져

사무직의 가장 큰 건강 위해 요인은 직무 스트레스다. 성과 강요와 업무과다, 전문성 요구 등 화이트 칼라를 내모는 요인은 다양하다.

 아주대병원 산업의학과 박재범 교수팀이 한 자동차 회사의 남성 사무직 근로자 286명을 대상으로 직무 스트레스와 우울·불안 정도를 분석한 결과, 잠재적 스트레스군은 42.2%, 우울·불안군은 각각 57.7%, 37.7%인 것으로 나타났다. 심각한 스트레스·우울·불안군도 각각 8%, 19.6%, 4.8%였다 (대한산업의학회지 2008년).

 직무 스트레스가 정서장애만 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치명적인 뇌심혈관계 질환과 근골격계 질환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스트레스는 자율신경계에 영향을 미친다. 교감신경을 자극해 인체가 긴장상태를 계속 유지한다.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고, 혈압이 올라가며, 면역계에 혼란이 온다. 여기에 동맥경화·고지혈증·당뇨병과 같은 기존 질병이 ‘방아쇠’ 역할을 하면 돌연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실내공기, 이산화탄소·포름알데히드 너무 많아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는 사무직에 가장 흔한 질환은 근골격계 질환. 손목질환인 수근관증후군이나 어깨·목질환 등 VDT증후군이 여기에 속한다. 운동 부족은 비만· 만성피로·두통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밀폐된 공간에 근무하는 직장인은 ‘빌딩증후군’에 시달리기도 한다. 용인대 산업환경보건과 정지연 교수팀은 서울·인천·광주·부산지역에 소재한 4개의 상업용 빌딩에 입주해 있는 36개 사무실의 실내공기 질을 측정했다. 그 결과, 12개 사무실에서 이산화탄소 농도 기준인 1000ppm을 초과했다. 눈과 같은 점막에 자극을 주는 기준치 이상(0.1ppm)의 포름알데히드도 193곳 측정시료 중 3곳에서 발견됐다(한국산업위생학회지 2008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빌딩의 약 40%가 실내공기의 오염 때문에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인천근로자건강센터 노재훈(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 소장은 “사무실 프린터에서 다량의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복사기에서는 오존이 방출된다”며 “내부 공기를 정화하는 환기시스템이 구축돼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아직 사무직 건강관리에 대해 정부나 기업이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서울성모병원 산업의학과 구정완 교수는 “사무직만의 맞춤형 건강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직무 스트레스와 환경 요인이 사무직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조사부터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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