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288> 873만 건 보관 ‘대통령기록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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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대통령이 남긴 작은 메모지 하나도 사실 국정과 관련된 우리의 역사입니다. 함부로 버릴 수 없다는 얘기죠. 그럼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면 자신이 직접 작성한 문서를 집으로 가져갈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대통령이 임기 중 남긴 기록물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지난 2007년 개관한 ‘대통령기록관’이 바로 문서들이 살고 있는 집입니다. ‘21세기 승정원’이라고 불리는 곳이죠. 대통령이 작성한 단 한 장의 문서라도 국정에 관한 기록이면 영구 기록물로 보관됩니다. 대통령기록관으로 한번 떠나볼까요?

강기헌 기자

적외선 감지 장치 갖추고 보관 … 공개가 원칙

대통령기록관에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대한민국 대통령들이 남긴 기록들이 보관돼 있다. 대통령이 남긴 기록물들은 여전히 살아 숨쉬는 역사다. [대통령기록관 제공]



대통령 기록관은 대한민국에서 단 한 명뿐인 대통령의 주요 정책 결정과정, 보고에 대한 지시 또는 언행 등과 관련된 기록을 관리하는 곳입니다. 대통령기록관은 2007년 4월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2008년 4월 경기도 성남에서 개관했지요. 2011년 3월을 기준으로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제17대 이명박 대통령의 인수위원회 시절 기록물까지 총 873만 건의 대통령 기록물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인수위 시절 기록물 5만2310건은 이미 기록관에 옮겨져 보관되고 있습니다.

대통령 기록관은 내진 설계된 철근 콘크리트 구조에 기록물들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기록물이 대한민국에서 단 하나뿐인 탓에 적외선 감지, 전자카드, 항온, 항습 등의 최첨단 보호설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대통령 기록물은 공개가 원칙입니다. 다만 ‘대통령 지정기록물’은 예외입니다. 공개될 경우 안보·경제 등의 안정을 저해하거나 정치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기록물들을 말합니다. 지정기록물에 대해선 최대 15년 동안(개인 사생활 관련은 30년) 공개·열람은 물론 국회 등의 자료제출 요구에도 불응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지정할 수 있습니다.

각종 문서·오디오 자료도 … 소유권은 국가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에게 보낸 친서. 왼쪽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답신.

대통령기록물들의 소유권은 국가에 있습니다. 기록관에는 대통령 재임 당시 제·개정한 법령, 조약 체결 시 대통령의 재가 문서, 대통령의 연설기록 등 모든 문서가 보관돼 있습니다. 대통령 사진, 오디오 자료, 정책 간행물, 대통령이 받은 국내외의 선물, 청와대에서 사용한 사무집기와 식기까지도요.

대통령이 정상외교를 할 때 주고 받는 선물도 외교 의전상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국가 소유물로 간주됩니다. 그중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 북한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받은 ‘금강산 선녀도’가 유명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제 7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고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평양으로 보냈습니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그해 5월 김일성과 사상 초유의 남북 비밀회담을 열었습니다. 금강산 선녀도는 평양을 비밀 방문한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게 김일성이 준 것입니다.

다른 대통령들도 외교적인 상징물로 쓰이는 선물들을 갖고 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81년 6월부터 7월 초까지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태국·필리핀을 국가 원수의 초청으로 공식 방문했습니다. 전 전 대통령은 말레이시아 방문 중 아마드 샤 국왕으로부터 물고기 모양의 수반(水盤)을 선물받았습니다. 수반은 꽃을 꽂는 등에 사용하는 것으로 바닥이 편평하고 낮은 그릇입니다. 이 수반도 기록관에 보관 중입니다.

1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일성 주석에게 선물받은 ‘금강산 선녀도’. 2 인도 샤르마 대통령이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선물한 간디 흉상. 3 노무현 전 대통령이 카자흐스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에게 받은 은으로 만든 마차 모형. 4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크 시라크 프랑스 전 대통령에게 선물받은 코냑. 5 전두환 전 대통령이 말레이시아 아마드 샤 국왕으로부터 선물받은 물고기 모양 그릇.



노태우 전 대통령은 89년 10월 미국을 공식 방문해 조시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둘은 정상회담에서 한·미 간 동반자 관계를 확인하고 공산권에 대한 공동대응을 약속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한국과 미국을 상징하는 계란 모양의 도자기를 선물 받았다고 합니다. 뚜껑을 여닫을 수 있는 이 도자기는 각각 흰색과 붉은색으로 장식됐습니다. 붓글씨를 취미로 가진 김영삼 전 대통령은 95년 유럽순방 중 리펑(李鵬) 당시 중국 총리로부터 대통령 이름이 새겨진 ‘낙관(落款)’을 선물받기도 했습니다.

99년 5월 러시아를 국빈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옐친 러시아 대통령과 단독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둘은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방안 등을 협의했습니다. 이때 김 전 대통령은 러시아 국방장관으로부터 나무로 만든 잠수함 모형을 선물받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9월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양국을 방문했는데, 첫 방문국인 카자흐스탄에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카자흐스탄의 유전 및 우라늄 개발에 한국이 참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의정서와 양해각서(MOU) 등을 체결했습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은으로 만든 마차 모형을 선물했습니다. 이런 선물들은 대부분 ‘청와대 사랑채’ ‘김대중 컨벤션센터’ ‘대통령기록관 전시실’ 등에 전시돼 있어 누구나 감상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 열람·사본 발급 가능 … 관람은 무료

대통령 재임 중 사용했던 물품 중 영구보존 가치가 있는 것은 ‘행정박물’로 규정해 의무적으로 보존해야 합니다. 행정박물은 책상·의자 등 주로 사무실 집기류가 많았으나 2007년 ‘대통령기록물 관리법’ 제정 이후 대통령 관저의 ‘식기’ 등도 포함돼 현재 3906점이 영구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 중 일부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개방한 청남대 등에 대여해 전시 중입니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시청각기록물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주로 대통령 참석 행사 등에서 촬영된 사진이 위주였다면 최근에는 디지털 사진과 동영상 테이프도 중요한 기록물로 관리되고 있지요.

대통령기록관은 다양한 열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일반기록물은 대통령기록포털을 통해 신청을 하면 열람 및 사본발급이 가능합니다. 마이크로필름·영상기록 등의 특수매체와 미디어자료는 현장방문 해서 열람할 수 있습니다. 신분증을 지참하고 매주 월요일~금요일 오전 9시~오후 6시 사이 대통령기록관을 직접 방문하면 됩니다.

전화와 인터넷을 통해서도 신청이 가능합니다. 예약 없이도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까지는 무료로 전시관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 홈페이지(www.pa.go.kr)를 통해서도 기록물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에서는 대통령별 주요 사건과 주요 기록물 문서, 주요 기록물 사진, 동영상과 음성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에 위치한 기록관은 2014년에는 세종시로 이전합니다. 문의전화 ☎031-750-2153.

조국·통화가치 … 휘호에 시대상이 보인다

역대 대통령들은 자신이 직접 쓴 휘호(揮毫)를 남겼습니다. 기록관 전시실에는 대통령들의 친필 휘호를 한곳에 모아 전시하고 있죠. 전시실에 있는 휘호를 살펴보면 당시의 시대상이 엿보입니다. 또한 대통령의 통치 철학이나 성품도 나타나 있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한자로 중용(中庸)의 한 구절인 智仁勇(지인용)을 인용했습니다. 지혜, 어짊, 용기라는 뜻입니다. 5·16으로 집권해 1963년부터 1979년까지 17년간 재임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내 一生(일생) 祖國(조국)과 民族(민족)을 爲(위)하여’라고 썼습니다. 74년 5월 중앙공무원교육원 새 청사 준공식에 참석해서입니다.

‘3저(저금리, 저유가, 저달러) 호황’기인 80년대에 재직했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남긴 휘호는 각각 ‘通貨價値(통화가치)의 安定(안정)’, ‘에너지 자립의 터전’이었습니다. 전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는 87년 한국은행 신관 건물 준공식에 남긴 것이라고 합니다. 98년 취임해 임기 중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1월 새해 첫 휘호로 ‘새 千年(천년) 새 希望(희망)’이라고 적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앞둔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2일 군사분계선을 넘었습니다. 이를 기념하는 표지석에 노 전 대통령은 ‘평화를 다지는 길, 번영으로 가는 길’이라고 적었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 智仁勇(지인용)

박정희 전 대통령 내 一生(일생) 祖國(조국)과 民族(민족)을 爲(위)하여

전두환 전 대통령 通貨價値(통화가치)의 安定(안정)

노태우 전 대통령 에너지자립의 터전

김영삼 전 대통령 民族繁榮(민족번영)의 길

김대중 전 대통령 새 千年(천년) 새 希望(희망)

노무현 전 대통령 평화를 다지는 길, 번영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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