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Book/강추! 이 책] '프로' 엄지손가락만 남은 산꾼의 웃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끈'
박정헌 글, 열림원
232쪽, 9500원

정현종 시인은'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그 섬에 가고 싶다고 했다. 산악인 박정헌(34)씨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끈이 있다'고, 그 끈이 우리를 살게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끈은 함께 산을 타는 사람이 서로 몸을 묶는 자일(등산용 밧줄)을 가리키면서 또한 험난한 인생을 등반하며 나누는 인간적 믿음과 사랑을 상징하고 있다. 소설가 김훈씨는 '끈은 길 없는 세상을 건너가는 인간의 길'이라고 썼다.

박정헌씨는 올 1월 후배 최강식과 둘이서 히말라야 촐라체 북벽 정상을 밟고 내려오는 길에 빙하 계곡에 빠지는 사고를 당했다. 박씨는 죽음 앞에서도 최씨와 연결된 자일을 끊지 않고 사투를 벌이며 닷새를 버텨 살아 돌아왔다. 영하 20도의 추위 속에서 며칠을 구른 몸은 동상과 탈수로 엉망이 되었다. 손가락 여덟 마디와 발가락을 부분 부분 잘라내는 대수술 뒤 그는 전문 산꾼의 길을 포기했지만 오히려 진정한 등반의 의미를 깨달았다.

"우리의 이야기는 죽음의 지대에서 살아 돌아온 극적인 생환에 관한 휴먼 다큐멘터리도, 자연에 도전했던 인간의 끝없는 모험도 아니다. 다만 한 인간이 먼길을 돌아 찾아낸 진정한 사랑과 소박한 행복에 관한 아주 낮은 이야기다." 그는 "아직 엄지 손가락이 남았다"고 웃는다. 암벽을 타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히말라야와 만날 꿈을 꾸고 있다. "산은 네팔에도 파키스탄에도 히말라야에도 에베레스트에도 아닌 마음속에 있었다."

정재숙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